소설 비소설 시집 경영|학술 아동학습 건강|종교 신간목록
입금계좌번호
국민은행 814-01-0408972
뿌리출판사

   한국의 기상나팔
 
   저자/역자 : 김영호(재독작가)
   출판일 : 2015.08
   페이지 : 352 ISBN : 9788985622936
   판형 : 신국판  
   정가 : 13,000원
 
해당도서 분류바로가기 : 비소설
바로가기 : >>내용  >>목차  >>출판사서평

내용

2015년 8월 3일 독일 광부출신 김영호(재독작가)의 한국의 기상나팔 (신국판 352 13,000) 시집이 발행돼 전국 도,소매서점에 배포됐다.

김영호 님은 1944년 10월 충남 아산에서 출생했고, 1964년 서라벌예대(현 중앙대학교)2년 중퇴 후 월남전에 참전했으며, 1974년에는 서독 광부로 일했으며, 이후 독일의 괴테인스티투트에서 독일어와 문학을 공부하고, 미국을 거처 현재는 독일 뮌헨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으로 외상값, 구름 따라 떠도는 나그네길,

소설로는 동방의 등불을 다시 밝히자, 잃어버린 산하 등이 있다.



이 시집은 역사의 오류들 속에 멋모르고 지나간 우리 역사의 기억들이, 어느 날 잡자기 찾아올 수 있는 불행과 마주칠 준비를 위한 역사적 책임의식 속에서 반성해야하고, 앞으로 다가오는 변화의 시대를 향한 혁신적인 삶의 길을 모색해 보기 위해 모든 사물의 이치 즉, 순수하고 정당한 것과 옳고, 그름을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의 눈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보자는 뜻이다. <편집자 주>


목차

8 들어가는 말

25 하느님

26 불평등

28 미개와 문명의 갈림길에서

30 비록 당신의 말씀이

31 평화

3 검은 구름

3 나의 길

40 신의 존재 유무에 대해서

42 삶의 가치

43 행복

48 조국의 자화상

49 세상은 출렁이는 고해의 물결

50 독일

51 세상의 법은

54 봄의 노래

56 결코 인간성을 미혹하지 마십시오

58 수 없이 많은 사원의 탑과

59 광란

6 지구의 넓이와 길이는

62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64 평화

66 죄인

68 막장

69 증오

70 하늘의 별을 따기 위해

72 연약한 생명들

73 팔일오

76 푸른 바다의 물결은

77 욕

80 용의 형상

82 화산이 터지면

83 고기굽는 냄새

84 덕스러운 삶이란

85 머슴살이

90 야경꾼

92 가식

94 탐욕의 나열

9 사막

96 시에 대해서

98 굴곡진 삶으로

100 꿀꿀이 죽

102 독사들의 행차에

103 신이 하늘에다

104 미지의 나라

106 관람장

108 독일의 장바닥

109 고갯길

114 고통

116 모순

118 육체적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120 토끼의 지혜

122 꿈속의 날개

124 피땀 흘리며 일하는 자와 함께

126 오! 조국이여!

128 죽음

130 사람 무시하는 마담을 질타하다

132 썰매놀이

133 맹수들이 연약한 짐승들의

136 외상값

138 이리떼들

140 자연의 침묵

142 사랑의 힘

146 세상길 가자 하니

148 죄 인

149 인류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150 돈, 돈, 돈

156 눈이 내립니다

157 가야 할 곳

158 까마귀떼들

160 성난 파도

161 오솔길

162 종달새의 죽음

163 오월의 창공

164 평화의 깃발은

166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

168 불꺼진 이 밤에

169 호곡소리

172 길을 가다가 만난 소년과의 대화

173 고향예찬

174 화장터

176 부와 명예

178 야자수

180 앵무새와 원숭이

182 인간들의 지혜

184 지자들에게

186 고도

187 산 송장이나 다름 없는

190 어둠속

191 운명의 장난

196 자살터

198 노동자들의 삶

200 옛고장

202 로렐라이

203 죽음

208 죽음의 세계란

210 부활절

212 잃어버린 산하

213 나는 보고 있다

216 국토는 우리 것이 아닙니다

218 분단의 국토

220 실업자

221 산은 언제 보아도

222 물과 음식

224 생명의 불꽃

225 오! 조상의 오만함이여!

226 신과의 대화

228 시인의 안식처는 고난의 길에서

230 일상생활 속에서

231 아내

234 어디 잘난 사람 따로 있습니까

235 단군의 자손은

238 몸이 아프고 괴로울 때는

240 기독교인들에게

242 유공자증

244 오늘도 어리석은 자들의

245 당신은 어떤 목적으로 시 쓰나요?

248 남북분단의 비극은

250 사기꾼들

252 착각

253 인간의 순수한 마음을

254 뉴라이트들에게

258 떼강도들

260 백인들의 죄악상

266 참다운 삶이란

267 시란 것은

270 이상한 일들

272 공부

276 매미가 껍질을 벗듯이

278 독일의 개들

279 육이오 동란

286 조상의 얼굴에 침을 뱉어라!

296 복종

298 석가와 예수

300 그대의 삶을

302 우리의 역사

306 총과 칼

310 한량없이 몰아쳐오는

311 국립묘지

314 허위

316 욕심

318 만물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319 동물의 세계

324 실지로 따지고 보면

325 사람들은 흔히

326 선각자

330 세계의 평화로 직결되는 한반도

332 귀동냥

334 가난한 생활에

336 당신을 향한 우리의 영혼은 피곤

337 걸레

338 빗속의 추억

339 거짓말

344 가문

346 오! 창조주여!

347 복이란

350 종착역




서평

들어가는 말



오늘날 보는 바와 같이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인간정신의 상실과 함께 개발이란 이름 아래 신성한 자연을 초토화시키는 공해로 인해 발생하는 무서운 질병과 지능적으로 늘어가는 악랄한 범죄와 겉으로는 평화란 그럴듯한 명목으로 약소국을 털도 뜯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산 째로 집어 삼키는 전쟁은 피와 살을 태우는 살인기계들의 광기에 찬 온갖 잔인한 만행들이 갖가지 부작용을 잉태시키면서 인간의 삶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본인은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들의 삶을 잔인한 지옥처럼 둘러싸고 있는 삶의 가치들이 더이상 기만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소나마 각성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낡은 전통에 대한 부정과 우둔한 역사의식을 깨뜨리고, 새 시대를 향한 혁신적인 삶의 길을 모색해 보기 위해 모든 사물의 이치 즉, 순수하고 정당한 것과 옳고, 그름을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의 눈에 귀를 기울일수 있도록 힘을 모아 이 책에 적어본다.

그러니까 예술이나 철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이 그러하듯이 시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찬란한 태양이 대, 소미물에 이르기까지 온 누리를 적나라하게 비춰주는 것처럼 현실에 밀어닥친 시대적 정신을 파악하여 이념을 전달하는 것는 곧 시인의 정신에 의해 매개되어 감수성이 약하고, 창조성이 부족한 나머지 무기력한 헛된 갈망이나 권태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을 전달해 주기 위한 것으로 인간정신에 입각하여 한자 한 획도 더 보태거나 빼지도 말고,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전달해 주는 막중한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참된 시의 기능은 언제나 의지의 진정제로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고귀하리 만치 진실을 말해주는 꽃 중의 꽃과도 같이 오욕과 기만으로 얼룩진 더러운 세상을 씻고, 닦아주는 걸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부연해 말하자면 우리는 단지 삶이란 막연한 욕망에 집착한 나머지 그냥 맹목적으로 먹고, 싸고, 마시면서 성질이 나면 서로 치고, 받으면서 살아가는 동물적인 만족 보다는 기왕지사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삶을 외상으로 주신 창조주의 은혜에 보답을 하는 것이 인간의 바른 도리가 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비록 하늘에서 들려오는 신의 계시나 성인이나 학자들의 말이 옳다고 할지라도 그런 빛좋은 것들이 한점이라도 인간의 정신을 기만하고, 마음의 상처를 주는데 쓰여지거나 약한 나라들을 통째로 집어삼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기회주의자들의 조종을 받아 움직이는 후진국의 첩자들이 권좌에 올라앉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국민을 착취하기 위해 갖가지 기만술로 얼룩진 악행을 저지르며 약자의 가슴에 한을 심어주는 것과 신의 이름으로 사랑과 헌신을 외치면서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극락이나 천국을 들먹이며 신도들의 재물을 빼앗아가는 종교인들과 혹은 어떤 형태의 조직이나 부유한 자들의 권위 따위에 의해 묘하게 눈속임하여 약자에게 경각심을 심어줘 자신들을 존중하게 만드는 이런 종류의 애매하고 사악하기 짝이 없는 궤변들은 인간의 삶에 대한 가혹한 조롱거리로 옛날의 왕정시대에나 통했던 일이지 깨일대로 깨인 현시대에서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우리는 식민과 분단의 질곡 속에서 사무쳤던 통한이 얽힌 역사적 사실들이 증언해주고 있는 바와 같이 자손들이 점령국의 속국 신세로 전락하게 돼 자신들이 처해진 시대의 고난을 바라다 볼 수 있는 이성이 결여되어있지 않는 한 이 나라가 잘못된 오류로 얼룩진 나머지 아직도 고지식한 불신의 향기를 내면서 우둔과 악의적 모순들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고, 그런 사건들이 발생했을 때는 그냥 맹목적으로 원수를 사랑하고 바보같이 맞아주며 순종하는 잘못된 편견을 버리고, 즉시 그에 저항하고 가해자에 항의를 함으로써 잘못된 것들엔 반기를 들고 부연히 일어서 그들에게 빼앗긴 주권을 되찾아 인류의 영원한 목표인 미적 가치 즉,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이데아의 세계를 추구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진정한 시인이란 언제나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세상을 바꿔 놓을 수 있는 눈과 귀를 가진 참신한 사람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불순분자들이 인간의 순수한 영혼을 마비시키기 위해 그대의 뇌수에 비수를 꽂아놓고, 탐욕으로 얼룩진 기만의 그물을 칠 때 그것을 제거해주는 양심의 총탄과도 같은 것이므로 진정한 시인은 언제나 칼날같은 저항정신으로 거짓된 위선과 욕심으로 얼룩진 위정자들의 부정한 착취 속에서 울부짖으며 죽지 못해 살아가는 서민층에 대한 동정과 민족의 시련이자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고통받는 국민들의 현실을 통찰력있게 똑바로 바라보는 시대정신을 취하게 됨으로써 무지의 욕망 속에 잠들어있는 온갖 탐욕과 기만은 버리고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와 부패를 없애야 하겠으며, 신을 향해 비대발괄하는 종교적 우상을 버리고, 허무한 천국과 극락과 지옥을 없애고, 자기의 에고를 죽이고, 독재자의 그릇된 만행을 무기력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됨으로써 위대한 역사를 창조할 수 있게끔 미래를 밝혀주는 막중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진정한 시인은 언제나 시대의 좋고 나쁨을 초월해서 비록 죽음의 칼날이 눈앞에 번쩍일지라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으로 직관적인 태도를 견지한채 눈에 보이고 느끼는대로 바른말로 질타하게 됨으로써 이해력이 부족한 나머지 착각 속에 빠져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민중들의 정신을 일깨워 줌으로써 내적인 생명력을 보유할 수 있는 이념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이나 관료를 비롯한 사대주의 사상에 눈이 먼 나머지 호시탐탐 노리는 외세의 힘을 빌려 부귀영화를 노리는 자들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위정자들이나 그 밖에 쥐구멍에 고개를 내밀고, 뭐라도 좀 먹을것이 없나 하고, 수서양단하는 기회주의적 성향을 지닌 교조주의자들이나 사람을 초개처럼 죽이는 영웅호걸들은 이런 사태에 직면하게 되면 자신들의 부적당한 입지에 위험을 느낀 나머지 시인이 제발 입을 좀 다물어 주기를 바라면서 뇌물이나 관직을 줄 테니 서로 좋은 게 좋다고, 달콤한 말로 비대발괄을 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연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 정의와 양심을 갖춘 시인이라면 그들의 횡폭한 만행이나 사기적 수법에 절대로 타협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욕망과 아귀다툼 속에서도 자신의 영혼이 스러지는 아픔을 겪는 한이 있을지라도 초지일관 변함없이 조금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으로 옳고, 그름을 숨김없이 명확하게 가려내어 고발함으로써 민족의 시련과 아픔을 평화롭게 감싸주는 노래의 사수가 되어 그것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한시대의 밝아오는 여명과도 같이 맑고, 깨끗한 양심으로 닦아낸 영혼의 거울이 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시인의 눈으로 보면 빛이 되고, 귀로 들으면 노래가 되고, 조국의 미래가 보이는 교훈이 되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판단해서 시를 쓰게 되는 것은 결코 거짓일 수가 없으며, 그것은 또한 세월이 흘러도 소멸해 버리는 것도 아닌 인간의 본능 그 자체이기 때문에 모든 시대의 정신을 타락시키는 소행을가진 욕심 많은 왕조나 탐학을 일삼는 양반을 비롯한 권력자나 종교인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바른말로 진지하게 질타를 가하면 경고하는 시인들을 잡아들여 국가와 민족을 배반한 반역이나 적색문자로 찍어 하늘의 뜻을 배반한 이단으로 몰아 처형을 시키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발악을 해도 정의와 양심을 향해 돌진하는 시인의 입만은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시인이 결코 없는 것을 가지고, 말재주를 부리기 위해 모순을 비모순으로 그럴듯하게 합리화시키거나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공허한 의설을 추구하기 위해 끝없는 허공을 헤매면서 꾸며대는 언어의 연금술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한가지 예외가 있다면 시인은 항상 각적을 부는 파수꾼이나 딱따기를 치는 야경꾼처럼 혹은 용마루 위에서 여명을 알리는 수탉처럼, 기상나팔을 부는 나팔수처럼 장차 일어날 일들에 대비하고 있기 때문에 시인은 언제나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고, 형언할 수 없는 인간의 고통과 비애, 탐욕스런 악인의 횡포, 빈곤한 자들의 절망적인 파멸과 함께 주어지는 쓰디쓴 냉대 등 그밖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온갖 만행들이 얽혀있는 비리들을 정확하게 가려내어 하나라도 더 보태거나 빼지도 말고, 자기 양심에 따라 정의의 소리를 드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개의 시인들은 시가 마치도 하늘에서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에게만 들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이라도 되는양 경직되고, 편협한 종교적 교리에 사로잡힌 나머지 공허한 망상의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그럴듯하게 꾸며대는 것은 앵무새나 개, 소, 돼지나 철모르는 어린 아이들처럼 열등하고, 우둔한 민족들에게나 어울릴 일이지 성숙한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 교양인에게는 도저히 맞지 않는 일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란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들이 인식할 수 있는 현존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해석하고, 직관되는 이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험의 대상이기 때문에 시가 만약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그림자가 아니고, 현실과 동떨어진 허풍과 궤변으로 이루어진 망상으로 흐르게 된다면 그것은 마치도 뿌리없는 나무처럼 그것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게 됨으로써 시인은 어떤 특정한 집단이나 사적인 명예에 집착한 나머지 시대적 조류에 편승하여 자신이 무슨 위대한 예언가라도 되는 것처럼 아름다운 거짓말로 종말을 운운하거나 특별한 구도자라도 되는듯이 고귀하고, 거룩한 흉내를 내면서 경건한 속임수나 기만된 형상으로 인간의 참다운 영혼을 마비시키는 어리석은 망상들로 바람난 처녀처럼 떠돌아다니며 수다를 떠는 것을 시라고 착각하는 작업에 눈곱만큼이라도 동참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시를 쓰는 사람이 자신의 처해진 인생관이나 세계관에 따라서 개인적인 감정이나 이해타산에 눈이 어두운 나머지 자신들이 처해진 환경에 따른 인생관을 표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를 쓰는 사람의 자유이기 때문에 누가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고 간섭할 권리는 없다고 할지라도 시가 만약 시대의 발등에 떨어진 현실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무슨 암호풀이를 하듯이 자기혼자만 아는 괴상한 문자를 써가며 괴리된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면 그것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게 됨으로써 모든 활기와 생명력의 상실을 가져오게 되므로 사물을 인식하고, 지각하고, 파악하는 이해력이 부족한 불멸의 바보로 타락하여 다만 욕심과 질투, 시기, 모순이나 그밖에 비열성, 간계를 비롯한 게으름, 방종, 허례허식 등에 이르게 됨으로써 인간의 내면 속에 그렇게도 제어할 수가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솟구쳤던 순수한 삶의 가치들이 힘을 잃고 사라져 버림과 동시에 요행이나 바라는 인간으로 타락하여 뺏고, 빼앗는 우리의 역사를 통해서 흔히 본 것처럼 백성들은 굶주림에 지친 나머지 기아에 허덕이게 되고, 탐욕의 광기로 가득찬 돈 많은 갑부들은 잔칫상에는 꽃이 있어야 술맛이 난다고, 한잔 술에 얼큰히 취해 여자들을 부둥켜 안고, 해괴한 춤을 즐기거나 절에서 승무를 추는 것이 무슨 큰 자랑거리라도 되는양 조잡하고, 고의적인 상투어로 몇자 적어놓은 갑부들이나 권력자들의 향락적인 기교시를 비롯한 돈많은 기업의 후세들이 직원의 고혈을 쥐어짜서 착취한 막대한 재물을 사금고에다 가득히 쌓아놓고, 청빈한 체 해가며 자신들의 한가한 생활을 읊는 위선에 가득찬 저질적인 허풍이나 편파적인 궤변들이 낮은 차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실지로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진실은 언제나 감추어진 채 이루 다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로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허망하고 야비하기 짝이 없는 무익한 오류와 이기심, 증오를 비롯한 경솔하거나 우둔하고 교활하여 크고 작은 오류들이 서로 모여져 이미 지나간 오류들이 다시 등장하므로 사회를 음탕한 소굴처럼 부조리의 도가니 속으로 휘몰아넣고 있는 것을 볼 때 만약 재물이나 여자에 눈이 먼 사람들이 자신들이 처해진 시대정신을 망각하고, 자신들의 인간답지 못한 행위를 묘하게 합리화시킨 그런 수준이 낮은 감각적 찌꺼기들은 민중들의 삶의 가치관에 혼란을 가져와 세상을 삐뚤어지게 보는 역사의식을 갖게 됨으로써 인간의 고통을 평화롭게 감싸주고, 정의와 양심을 외치는 시에 대한 모독이라고밖에 달리 보아줄 도리가 없게 되는 것이 바로 이런 뜻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대상이 속마음은 독을 품고있는 전갈처럼 상종하지 못할 만큼 진저리날 정도로 역사에 죄를 저지른 관리들이나 나라의 광복을 찾으려는 독립군을 처단한 친일 앞잡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파당에 속한다 해서 역사의식을 결여한 채 정의와 양심을 저버리고, 그럴듯하게 정당화시켜주는 것이나 사적인 이익과 명예를 위해 권력에 빌붙어 곡학아세하는 모순된 행위를 비모순처럼 미사여구로 합리화시켜 나가면서 위대함을 자처하는 것은 싸구려 시인들에게는 어떠한 시적인 진리도 필요치 않으며 오직 사사로운 목적을 탐색하는 명예욕만이 유일하게 작용함으로써 이미 국민의 목소리이기를 저버린 죄인들로서 당연히 역사의 재판을 받고, 그 죄과에 따라 책임을 지든가 혹은 지옥의 쓰레기통에 모두 던져버려도 시원치 않을 궤변가들이라고 선언을 하게 되는 까닭은 시란 것은 무엇보다도 상하고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가 모두 쉽게 접할수 있도록 평등하게 비춰져야 하는 영혼의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라가 혼란하고, 국민이 도탄에 빠져 허덕일 때 그것을 의식하고 옳고, 그름을 똑바로 가릴 수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를 막론하고, 내적인 저항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거기에는 언제나 시라고 하는 인간본능의 욕구가 자연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은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중의 특권으로서 시인된 자로서의 과제는 어디까지나 그런 나락의 길로 빠지지 않게끔 하기 위해 반드시 거치고, 나가야 할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거칠고, 험악하기 짝이 없는 인간사회의 혼탁한 갈등속에서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고, 수도란 명목으로 산속으로 회피하는 스님들이나 맹목적인 종교적 환상에 사로잡힌 목사들이나 신부들처럼 오만한 마음으로 자신들이 마치도 하늘의 명을 받고 내려온 사람처럼 거룩한 흉내를 내면서 천당이나 극락의 수문장이라도 되는양 허무맹랑한 환상의 세계를 들먹이며 재물을 뜯어내는 것이나 차별을 사랑으로, 살인자를 성자나 선각자로, 친일파나 반역자가 마치도 애국자처럼, 사사로운 목적이나 명예를 얻기 위해 갖가지 미사여구로 시를 지어 사람들의 텅빈 머리 속에 억지로 밀어넣는 것은, 마치도 구덩이를 파놓고 장님을 인도하여 흙으로 덮어버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사람들의 모든 두뇌조직이 파괴되어 활기찬 삶의 가치관에 치명적인 혼란을 가져오게 되는 것은 마치도 꿈에 나타나는 귀신이나 도깨비 불이라도 보는 것처럼 우리들의 삶을 파괴하는 악마의 장난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현재의 고통은 미래의 고통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뒤에 오는 사람들의 귀를 먹게 하고, 눈을 멀게함으로써 세계에서 보기 드물 정도의 열등한 국민으로 타락하게 됨으로써 결국은 나라가 망하는 근본 원인이 되었다 해도 지나친 판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시인은 비록 자신의 영혼이 아픔을 겪을지라도 지배자들의 횡포를 두눈 크게 뜨고 지켜보고, 백성들을 착취하는 관리들의 탐욕때문에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의 아비규환으로 동냥하는 걸인들의 문전걸식 속에서 강대국들의 눈속임으로 터무니없는 극락이나 천국을 들먹이며 허공에 성채를 지으려고, 발광하는 종교인들의 허무맹랑한 망상을 버리고, 당신의 얼룩진 외투 속에 감춰진 욕된 마음 속에서, 북녘의 독재자에게 짓밟힌 인권착취 속에서, 바른말을 하다가 잘못 걸리면 허허벌판으로 끌려가 기관총으로 난사당하는 시대의 아픔 속에서, 고난받는 삶의 현실 속에서 거짓과 위선과 기만을 벗어던지고 발가벗은 상태로 보고 듣고 느끼는대로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가려내어 미래의 역사를 창조할 수 있게 활력소를 불어넣어 줌으로써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가 마치도 하늘에서 들려오는 기상천외한 영감처럼 허풍을 떨거나 점쟁이처럼 사주풀이를 하거나 그밖에도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공허한 세계를 미화시켜 말하는 것은 우리들의 순수한 사고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게 됨으로써 그런 것들은 참된 의미에서의 시라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란 어디까지나 인간들이 생활하는 삶 속에 내재한 시비애락에 얽힌 고충을 대변해주는 것인만큼 시는 바로 당신의 일상생활 속에 무수히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언하면 어린이들의 놀이 속에서, 밥 달라고 우는 백성들을 무시하고, 괴롭히는 호랑이 보다도 더 무서운 위정자의 목구멍 속에서, 천국이나 극락을 보내주겠다고 돈을 뜯어내는 종교인들의 허황된 거짓말 속에서, 왕도정치의 경제적 침탈 속에서, 아비를 원망하는 에밀레종소리에서,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가 인당수에 몸을던진 심청의 애달픈 사연 속에서, 헐벗고 굶주리다 못해 보릿고개 삼년에 북망산천을 넘어가는 빈민들의 고통 속에서, 작년에 왔던 각설이 타령을 연주하는 걸인들의 동냥 속에서, 배가 고픈 나머지 자신이 낳은 아기가 닭으로 보이는 바람에 잡아먹었던 여인의 실성함에서, 나물 캐는 처녀들의 꽃바구니 속에 일본놈들에게 끌려간 종군위안부들에서, 메커니즘이라는 반공의 광기가 한국 전역을 휩쓸었던 반공이데올로기 속에서, 팔에 이두박근과 삼두박근 올록볼록 튀어나온 깡패들이 정권의 비호 아래 애국 단체로 둔갑돼 무소불위의 주먹을 휘둘렀던 무법천지의 혼란 속에서, 양처럼 순해빠진 나머지 우가 뭐고 좌가 뭔지도 모르고 잘 살게 만들어 준다는 말에 속아 아무 것도 모르고 도장을 찍은 죄로 빨갱이나 반동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민중들 속에서,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 채 굶어죽고 얼어죽은(국민방위군) 영령들의 행렬 속에서, 6,25동란에 배가 고파 환장한 나머지 미군이 지나가면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며 손을 벌리던 아이들과 달러를 벌기 위해 미군이 지나가면 아이 러브 유 를 외치며 자기 몸을 사달라고 애원했던 양공주들을 부대로 납치해 윤간한 뒤 머리를 깎아버린 미군들의 만행 속에서, 나무꾼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접근금지구역에 들어가 나무를 한다는 이유로 미군에게 살해당한 것과 파주에서 미군들이 한국인 소녀를 도둑으로 몰아 형을 가해서 죽게 만들었던 가슴 아픈 슬픔 속에서, 이름도 없고 존재도 없으니 살려둘 필요가 없기 때문에 독재정권의 희생물이 되어야 했던 실미도 요원들의 억울한 죽음 속에서, 권력자나 종교인들을 비롯한 부자들의 썩은 장기를 바꾸기 위해 조폭들과 짜고 선량한 사람들을 납치해 장기를 꺼내어 팔아먹는 의사들의 비인도적인 만행 속에서, 북한의 민중들이 헐벗고 굶주려 포학한 김씨 세도정권의 학정에 못이겨 살 길을 찾아 중국을 통해 제삼국으로 망명하는 삶의 험난한 행로 속에서, 어서 와서 우리들의 한을 좀 풀어달라고 손짓을 하며 애원을 하고 있음에도 당신은 마치 노루가 자신의 배꼽 밑에 사향주머니가 달려 있는데도 그런 느낌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한채 그 냄새가 어디서 나는 것인지도 몰라 그것을 찾기 위해 숲 속을 헤매며 방황하듯 신적인 광기에 사로잡힌 영감에 의해 얻어지는 것처럼 착각을 하면서 고통받는 현실의 시대적 정신을 외면하고 허공을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시가 티끌만큼도 있을 턱이 없다. 설사 있는 것처럼 꾸몄다 할지라도 그것은 마치도 뜬구름 잡는 것과 같이 허망한 말장난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있을 뿐이다.

시인이 이렇게 쓰라린 고통 속에서도 사랑과 향수, 결의와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마음을 갈고 닦으면서 하늘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사람의 도리대로 행하다 보면 시인의 내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의와 양심에 얽히고설킨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찬 나머지 산들바람을 타고 맑은 창공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평화롭게 노래를 부르는 종달새와 같이 생명의 율동은 맑은 호수처럼 자연스럽게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시대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혜안이 번개와 같이 빠른 속도로 시인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감에 따라 사람들을 괴롭히는 불행한 고통들은 이내 삶의 기쁨과 행복의 언어로 탈바꿈됨으로써 참된 시는 언제나 사악함이 없는데다 귀를 맑게 하여 우리의 삶에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해 주는데 비해, 현실을 외면한 천국이나 극락이나 지옥을 운운하며 독재자를 찬양하는 시들은 한결같이 사람의 마음을 뜬구름 잡는 것처럼 허황된 꿈을 꾸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보는 바와 같이 동서고금의 많은 시인들은 이런 시에 대한 본래의 사명을 망각한 채 한 인간의 우상화를 위해 권력이나 부자나 종교의 노리개로 굴러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함을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같이 왕처럼 군림하는 독재자나 종교적인 카리스마의 권위에 현혹되어 진리보다는 물질과 명예와 권력과 감투를 더 우선시하게 되는 탐욕의 동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평화의 사랑과 정의에 인정이 인권보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인간의 참된 도리를 망각하고, 순수한 인간정신이 권력이나 종교의 노리개로 전락되어 창살에 갇힌 죄수처럼 자신의 정신을 쇠사슬로 얽어매어놓는 꼴이 되어 인간세상에 죄악의 씨를 뿌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흔히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사회나 독재정치를 하는 빈곤한 나라들이나 아직까지도 민주정신을 결여한 나머지 왕당정치를 하고 있는 북한과 이슬람 국가들이나 자신들의 제국주의 정책을 합리화 시키려는 일부 백인들의 국가에서 흔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한국의 시문학 작품들을 대략 고찰해 볼 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고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오천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역사 속에서 자신들이 처해진 시대적 환경에서 백성들의 삶에 도움을 주고, 민족의 장래를 위해 계몽정신을 발휘했거나 왕이나 양반통치자들을 비롯한 독재자들의 학정 속에서 핍박을 받으며 허덕이는 민중들의 고통을 헤아리고, 양심선언을 한 저항시는 손가락을 하나 둘 꼽을 정도로 빈약하기 이를 데가 없으며, 천편일률적으로 유교 이념을 곁들인 감정을 담아낸 궤변들이 주류가 되고 있어서 부녀자들을 겁탈하고, 백성은 착취당하여, 이에 불행 속에 빠진 백성들을 이런 왕이나 관리들과 탐욕에 눈이 먼 양반들을 오욕으로 얼룩진 비리를 온갖 거짓말을 동원하여 시인들이 찬사를 했으며,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압살한 졸렬한 독재자들이나 민중의 피땀으로 재물를 쌓은 자본가와 탐욕의 노린내가 코를 찌르는 종교인들이 마치도 민족의 장래를 위해 무슨 큰 공헌이라도 한 것처럼 기가 막힐 정도로 신성에 가깝도록 위대한 선각자나 영웅으로 둔갑시켜 추앙받고 있다는 것과 부처나 예수를 비롯한 공자같은 사람을 갖가지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찬양을 하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양심과 역사의식을 망각한 몰지각한 무지의 소치라는 것과 그렇지 않으면 쌓이고 쌓인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고질병을 한치도 치유하지 못한채 자신들이 추구한 자주적인 문학적 형태는 하나도 찾아 볼 수가 없고, 모든 시문학들이나 정치제도를 비롯한 각종 건축 예술이나 철학 등 그밖에도 여러 방면에 걸쳐 중국문화와 서구문명을 모방해서 자신들의 작품처럼 짜깁기를 해놓은 흔적을 지우지 못한 채 천편일률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표절, 흉내, 번안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핑계를 대면서 다른 문화를 맹목적으로 모방한 나머지 마치도 앞의 개가 달을 보고 짖어대면 뒤에 따라오는 개도 앞의 개가 왜 그렇게 짖어대는지 그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덩달아 짖어대는 것처럼 사대주의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우러러 보면서 자신들의 명분을 내세우는 것은 마치도 구더기가 똥물을 마시면서 맑은 물을 마시는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몇가지만 더 거론해 본다면 세종이 지었다는 용비어천가나 월인천강지곡에서 보는 바와 같이 비록 문장이 백성들을 기만하기 위해 화려한 미사여구로 쓰여졌을지라도 주변국의 왕이나 시조신화 등을 모방하여 사사로운 왕조의 욕망을 온갖 신화적 감정을 동원하여 그럴듯하게 표현하였다는 것과 그밖에도 세종의 많은 저작들이라고 내세우는 것이 독창적인 면들이 많지 않고, 유교경전이나 고전에서 가져다 표현을 하였다는 것과 김시습의 금오신화나 김만중의 구운몽을 비롯한 김삿갓의 시들은 자신들이 지어낸 창작품이 아니고, 거의가 이웃나라의 고전에서 따와 사용한 것을 비롯하여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조선 최초의 신소설이라고 예찬했던 친일파 이인직의 혈의 누는 일제가 조선침략정책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일제의 식민지배를 합리화시킨 것과 친일파 시인인 인도의 타고르가 지었다는 동방의 등불이란 시는 원래 일제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찬미한 것임에도 그것이 마치도 한국을 위해 시를 지은 것처럼 검증되지 않은 짝사랑으로 미화시켰다는 것과 아울러 실학이라는 용어는 실제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1930년대 민족주의 사관에 물든 사학자들에 의해 고의로 만들어진 가짜라는 설이 그것이다. 더욱이 한심스럽게 생각되는 것은 타고르의 시를 표절한 불교시인 한용운은 조강지처와 자식을 버리고, 재혼을 하였던 것과 관련해서 스님들의 결혼론을 내세웠다는 것은 아무래도 승려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비도덕적 행위로서 문제가 있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그가 쓴 ‘님의 침묵’이란 시 속에 담긴 내용을 전반적으로 고찰해 볼 때 그것은 나라를 잃은 한민족의 아픔을 노래한 조국의 님이 아니고, 불교의 석가모니를 예찬한 것일수도 있음에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허망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고 윤동주의 시에는 일제에 대한 반항적이라 할만한 애국적인 시가 없는데 어찌해서 그를 저항적인 애국시인으로 부르며 또한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란 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기민족을 무시하고, 일왕을 찬미한 것 등을 비롯하여 가미카제 특공대를 찬양했던 것과 더불어 모윤숙이나 노천명을 비롯한 그밖에도 많은 친일파 시인들이 해방 후에는 비록 썩기는 했어도 준치는 된다고 얻을 것이 많기 때문에 정권의 선봉대가 되어 미국을 찬양한 이승만 박사나 만주의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들을 잡아서 기둥에 묶어놓고, 총검술로 군도로 목베기 시범을 보이거나 심지어 콧구멍에 담배를 꽂기도 했으며, 나물 캐는 여자들을 잡아다가 겁탈을 한 후 일본군 생체실험용으로 제공을 한 친일파들과 한일합방밀약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본으로부터 이거나 먹고, 군소리 말라는 식으로 한일합방에대해 눈감아 달라는 입막음으로 6천5백만 딸러나 되는 돈을 받아서 사용한 친일파 스네이크 박과 김종필를 비롯한 그 밑의 졸개들은 그들이 비록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의 상징은 될지라도 그 과오가 매우 크며, 이후 민주주의를 압살한 살인마 전두환과 노태우 같은 사람들과 권력과 짜고, 밀수해 치부한 대기업 자본가들을 찬양했음에도 어찌된 탓인지 이런 기회주의적이고 천박하기 이를데 없는 독재정권의 나팔수에 지나지 않는 허풍선이 협잡꾼들을 민족 최대의 위대한 인물이라고 시인들은 외쳐왔고, 그 반향은 지금도 역시 국민문학으로 한국 전체에 자리매김함으로써 진실과 거짓이 뒤바뀌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면 일제 치하에서 시대의 이름으로 목숨을 걸고, 투옥과 고문에 견디다 못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내던진 한두명의 시인들과는 달리 개인의 영달과 출세를 위해 누가 일제를 더 잘 찬양하는지 내기라도 하는 양 일제에 대한 추종을 순수란 낱말로 포장해 낭만주의다 상징주의다 사실주의다 뭐다 하고 떠들어 대면서 은근히 추파를 던지면서 조국을 배적했던 이상이나 김동인과 같은 문학적 사상들은 사실상 자신들이 처해진 시대적 환경에 따른 토대 위에 다져진 역사적 필연성에 의해 생겨난 자의식의 각성에 기초한 창조적 산물이 아니고, 단순히 일본을 거쳐 이 땅에 들어온 서구사조의 모방적 편향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찰해 볼 때 그들은 어떤 시가 역사의식을 죽이고 어떤 시가 역사를 창조하고 훌륭한 국민으로 이끌어 나가는지에 대해 좋고 나쁜지를 구별조차 못할 정도로 시의 본질에 대해 이해력이 부족한 것이다.

여기에 뒤질세라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시가 이데올로기의 시녀가 되어 버린 나머지 6·25의 침략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동포들을 살해했고, 북한 국민들을 굶겨 죽인 독재자 김일성과 그의 아들 김정일을 인류의 태양이라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아첨을 하는 그런 허위로 둘러싸인 엉터리 허풍선이 궤변가들은 웃지 못할 시를 들고 다니며 어리석은 사람들의 텅빈 머리 속에 강제로 쑤셔넣어 암기하도록 하여 위대함을 자처하는 것을 볼라치면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렇게 불합리하고,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아집에 얽힌 거짓된 상투어로 얼룩진 궤변을 어리석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강제로 주입시키려고, 발광하게 만드는 것은 마치도 개를 훈련시켜 사람을 물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숭이를 훈련시켜 사람의 행동을 흉내내게 만드는 것이나 앵무새를 훈련시켜 사람의 말을 흉내내게 만들어놓고 조롱하는 것과도 비견될 수가 있을 정도로 시의 본질을 과도하게 훼손시킨 나머지 비열하고, 경직된 감정들이 혼연일체되어 민중들의 의식수준을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저질적으로 타락시켜 놓았기 때문에 그러한 허위와 오류로 얼룩진 시들은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고, 국민들의 정신 속으로 파고들어가 자리잡고 틀어앉아 주인행세를 하는 바람에 오늘날 보는 바와 같이 사람의 탈을 쓴 사람이 이런 것을 보고도 외면하거나 합리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그럴듯하게 정당화시켜 시를 짓는 것은 국민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쓴 동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모든 사람들의 건전한 삶의 가치관에 혼란을 가져오게 함으로써 우리들의 시대적인 역사창조의 진로를 방해하고,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배만 부르면 말을 잘 듣고, 잘 짖어대는 개나 돼지나 주인의 채찍을 맞아가며 달려가는 말의 수준으로 국민들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뒤에 오는 후손들의 귀를 먹게 하고, 눈을 멀게 함으로써 눈은 있으나 보지를 못하고, 귀는 있으나 듣지를 못하는 병신, 바보, 천치로 타락하도록 만드는 오류를 범하였기 때문에 이런 일방적인 표현은 오만에서 생기는 설익은 무지에서 오는 결과의 산물로 우리 민족 전체에 강철과도 같은 멍에가 씌워지는 것으로 자신들이 나아가야 할 숭고한 문화창조의 길을 가로막고 억압한 나머지 사대주의 사상에 종속된 노예로 전락되어 약자에 대한 강자의 영원한 지배를 당연시하게 여기는 사대모방주의를 우러러 보면서 미화시키는 첨병역할을 함으로써 건전하고, 성실한 우리 사회에 온갖 거짓과 기만이 판을 치는 암적인 병폐만을 더해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급기야 인재지변의 씨가 되어 중환자실에서 아드레날린 주사를 맞아가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환자처럼 결국에는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원인이 되었던 것은 자신들 스스로가 그런 어리석은 정신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를 원했던 것인만큼 오늘날과 같은 문화적 후진국민으로 타락됨으로써 제 나라 제 땅을 가지고도 제 맘대로 못하고, 강대국들이 시키는대로 가지고 노는 자주성없는 열등하고, 무의미한 오류가 판을 치는 국민으로 전락되었다 해도 과히 지나친 말은 아니기 때문에 누가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탓할 바도 못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해 볼 때 무릇 시란 것은 무엇보다도 메마른 대지에서 싹이 트듯이 인간들의 잔인한 마음을 진리의 등불로 밝힐 수 있게끔 헌신의 날개를 활짝 펼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가 마치도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기라도 하는양 영탄을 하면서 잔재주를 부리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시란 것은 언제나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느낀대로 숨김없이 올바르게 전달을 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시가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시란 것은 어디까지나 유희나 풍월이 아니고, 현실의 반영인 까닭에 그 자체가 인간들의 괴로운 삶을 극복하고, 인간 상호간에 신뢰를 할 수가 있게끔 삶의 의지를 다져주는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인만큼 정직한 시인은 언제나 초지일관 변함없이 절대로 변명을 하지 않고, 불의를 그럴듯하게 정의로 둔갑시켜 인간성을 우롱하는 궤변이나 망발을 가지고, 시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는 것은 무지의 소치에서 오는 것이라고 밖에 달리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무식한 사람들은 아름다운 미사여구로 씌어져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파고들어가 보면 모든 시대의 정신을 타락시키는 시인들이 마치도 무슨 위대한 선각자라도 되는 것처럼 거기에 곧잘 현혹되어 덩달아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숨길 수 없는 실정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돈이 판치는 세상이 되어감에 따라 시가 돈이나 권력을 비롯한 관직이나 종교적인 카리스마를 위한 직업으로 타락한 나머지 바람난 처녀처럼 제멋대로 떠돌아 다니면서 이리붙었다, 저리붙었다, 수서양단을 하면서 위로는 국가적인 목적이나 아래로는 개인적인 여러가지 명예를 위한 도구로 타락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마저도 서로가 신뢰를 하지 못할 정도로 타락을 하게 됨에 따라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나 대기업가들이 서민들의 임금을 착취하거나 독재자가 제멋대로 정의를 무시하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압살하거나 종교인들이 기만된 극락이나 천국을 들먹이며 물질을 뜯어내는 까닭도 바로 이런 몰지각한 시인들의 시를 잘못 이해하는 데서 오는 피치 못할 기이한 현상이라고 해도 지나친 과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가 제발로 찾아서 걸어오지는 않는다. 그대가 정녕코 참되고, 진실한 양심을 갖춘 존엄하고, 숭고한 삶의 가치를 외치는 정의로운 시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호화찬란한 왕궁을 버리고, 설산에서 고행을 했던 석가모니나 예수가 17년간이나 인도의 부다가야, 녹야원, 베나레스 등지로 떠돌아 다니면서 불교의 수행을 통해 자신의 독특한 종교를 창시한 것처럼 공자가 천하를 철환한 것처럼 노자가 자연의 도를 외쳤던 것처럼 부귀영화를 누렸던 귀족출신인 톨스토이가 자신의 재산을 모두 털어서 농노들에게 나누어주고 눈 내리는 벌판을 향해 나그네길을 가다가 객사한 것처럼 겸손한 자세로 먼저 피눈물 나는 경험을 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이 위대한 시인을 만들 때는 그냥 맹목적으로 뜬금없이 아무나 공짜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고, 수 없이 많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 고난을 주는 까닭은 일찍이 괴테가 가난의 고통 속에서 쓰디쓴 슬픔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맛을 모른다고, 설파했듯이 고달픈 인생의 방랑길에서 슬픔과 고독을 한껏 맛본 사람이 아니면 붉은 저녁 노을 속으로 날아가는 저 기러기떼들의 의미를 알 수가 없듯이 절대의 시구는 절대의 고행 속에서 시대에 분노한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 알찬 열매가 되기 때문이다.

비록 그곳에는 신이 존재치는 않을지라도 인간이란 존재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우리의 속담이 말해주듯 이런 비참한 고행이 서려있는 곳에는 언제나 인간이 인간임을 알 수 있는 참된 진리의 길이 무한히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통해 훌륭한 시를 쓴 위대한 인류의 선각자들은 이런 고통을 몸소 체험하기 위해 철광석이 펄펄 끓는 용광로 속에서 쇠가 되어 나오듯 뼈를 가는듯한 고난의 길을 방황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도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고, 실을 빼내듯이 꿀벌이 꽃잎 속의 꿀을 빨듯이 부지런히 일하는 개미들처럼 괴로운 역경을 노래로 엮어서 갈 길을 잃고, 헤매는 목마른 영혼들의 가슴 속에 입김을 불어 넣어주는 이치와 같다고 할 수가 있을진대, 합당치 않은 말로 모순된 행위를 묘하게 합리화시켜 시를 짓는 것은 인간사회에 부패의 근원이 될 뿐만 아니라 치욕을 안겨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됨으로써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똑바로 전달해 줄 때 인간들은 비로소 무지몽매한 꿈 속에서 깨어나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고, 메마른 대지를 촉촉히 적셔주는 단비와도 같이 맑은 생명의 샘물이 용솟음치게 됨으로써 영원한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