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비소설 시집 경영|학술 아동학습 건강|종교 신간목록
입금계좌번호
국민은행 814-01-0408972
뿌리출판사

   소도(蘇塗)
 
   저자/역자 : 고창근 작가
   출판일 : 2008.06
   페이지 : 288 ISBN : 898562265
   판형 : 신국판  
   정가 : 10,000원
 
해당도서 분류바로가기 : 비소설
바로가기 : >>내용  >>목차  >>출판사서평

내용

이 소설은 주제의 무게를 서사 속에 잘 갈무리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또한 삶과 역사를 할퀴고 간 질곡과 모순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거나 격앙된 어조로 히스테리를 표출하지 않고, 사람살이의 상처와 그 언저리를 보듬고 살피면서 진솔한 목소리로 차분히 끌어가고 있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 오월문학상 심사평 중에서-



빼앗긴 생존권, 그 회복을 위한 절규

소설집 『소도(蘇塗)』에 수록된 단편소설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시간적 배경은 현재이며 지리적 배경은 경북 상주를 중심으로 한 안동 등으로 나타나 있다. 이 소설들의 공통된 특징은 도입부분과 종결부분은 현재 시점(視點)이나 중간부분은 지난 사건을 회상하는 과거들이었다. 더러는 지그재그로 현재와 과거가 빈번하게 교차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 다소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스토리를 끌고 가는 작가의 호흡에 빨려들어 무리 없이 소멸되는 듯하다. 무릇 작가의 입장에서 창작은 기술이자 예술이다. 첫 문장에서 이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되도록 빨리 독자의 흥미를 끌어들이려고 도입부분에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주인공을 어려운 환경, 강한 리얼리즘에 몰아넣는다. 독자는 그 템포와 서스펜스에 젖어 작품 속에 빠지게 된다. 특히 문체상의 테크닉과 예민한 관찰력에 의한 세부묘사가 돋보인다. 작가가 자신의 역량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습작들을 통해, 다각적으로 스스로를 시험한 흔적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이 소설집에서 나타나는 등장인물들은 대개가 불우하거나 소외된 계층, 비정상적인 육체 내지 정신을 가진 농촌사람들이다. 남자는 대인기피증, 의처증, 식물인간, 발기불능, 국제결혼 등이고, 여자는 남편에게 매를 맞거나 가출, 우울증, 외도, 씨받이, 실어증 등으로 집단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거나 인간성이 황폐된 인물이 살아가기 힘이 드는 농촌을 지키면서, 오늘의 실상들, 축산농가의 붕괴, 노령화, 난개발 등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그래서 공감이 가는 주제들을 통틀어, 빼앗긴 생존권, 그 회복을 위한 절규라고 말하고 싶다. 젊은 이 작가의 균형감각을 바탕으로 한 비판적 생명력이 앞으로 어떻게 작품화될지 기대해 본다.



이 만 재 (소설가·문학평론가)


목차

책 머리에

설레는 마음으로 세상과 소통되기를 희망한다

1. 소 도 (蘇 塗)

2. 밝은 아침

3. 불 임 우 (不 姙 牛)

4. 박 제

5. 존재에 대하여

6. C C T V

7. 강아지야, 안녕

8. 하 루

9. 굿 소 리

10. 이승에서의 마지막 꿈

11. 세월아, 세월아(중편)

작품해설




서평

빼앗긴 생존권, 그 회복을 위한 절규

─고창근 소설집 『소도』에 대하여─



이 만 재 (소설가·문학평론가)

소설(小說)이란 단어를 살펴보면, 즉 영어‘novel’은 ‘새로움’이란 의미의 불어‘novus’나 이태리어‘novella’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장편소설을 가리키는 ‘로망(roman)’은 12~13세기경 라틴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사용했던 로망스어로 씌어진 이야기를 가리키는 데서 비롯되어 지금의 뜻으로 굳어졌다. 이에 반해 동양에서 소설이라는 말은 고대 중국에서였다. 한나라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에, “소설가는 대개 패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소설이란 길에 떠도는 이야기와 항간에서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패관이 채집한 것들 중 정사(正史)에 기록될 만한 것이 아닌 사소한 이야기라고 가볍게 여겼다. 소설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문헌은 『장자(莊子)』이며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는 저급한 말재간으로 등한시했다. 당시로선 그 내용이 대부분 잡론(雜論)적이거나 황당무계했던 까닭에, 공자도 소설을 깔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소설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말 이규보의 『백운소설(白雲小說)』이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 잡록(雜錄)을 총칭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의미가 확대되어 사실이든 허구든 이야기의 구조를 지녔다면 모두 소설의 범주에 들게 되었으며 그 개념도 분명해졌다.

예술작품은 어떤 형식(관념)이 구체화된 소산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이 존재하기 위해 네 가지 원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작가, 목적, 재료, 형식을 들었다. 그러므로 스토리를 꾸며 내거나 만들어 낸 문학적 허구(虛構, fiction)는 소설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긴요한 형식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소설집 『소도(蘇塗)』는 10편의 단편소설과 1편의 중편소설로 엮어졌다. 우선 그 낱낱의 줄거리부터 살펴보기로 하겠다.

단편 「蘇塗」는 제목부터 전통적 토속신앙의 냄새를 풍긴다. 소도란 삼한 때, 하늘에 제사 지내던 성지(聖地)를 뜻하거나 해마다 오월 수릿날 시월상달에 질병과 재앙이 없기를 빌었던 풍습이다. 그 어원은 ‘솟대’ 또는 ‘솟터’의 음역(音譯)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인칭 소설로 두 가닥의 플롯이 병립되어 엮어진다. 하나는 문장대 산골마을의 소도에 참관했다가 뜻밖에 뒤풀이의 보쌈을 당해 과수의 방에 든 것, 다른 하나는 화자의 성기능 장애로 인한…… 아내의 외도(아테네 모텔), 의처증, 이혼강요, 아내의 정신요양원 입원을 그렸다. 배경은 향토성이지만 주제는 여성의성본능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단편 「밝은 아침」은 삼인칭 소설로 주인공 남자(화자)와 그 누님이 등장인물이다. ‘밝은 아침’이란 동화책의 여주인공의 이름, 백인에게 강제 이주 당한 나바호족 인디언을 지칭하며 남자의 아내가 누님에게 붙여 준 별호인 셈이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임박한 시점에서 사료 값이 치솟아 한우사육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실직한 남자가 이민 가기 전에 누님의 축사를 찾는다. 누님은 젖소 수송아지를 거세하거나 발정 난 젖소 어미에게 한우 수정란을 이식(인공)한다…… 젖소 수송아지는 5만 원, 암송아지는 70~80만 원, 반면에 한우 송아지는 200만 원이 넘고…… 시세 차가 엄청나서 남몰래 고역을 택한다. 1984년 소 값 파동 때, 소를 수십 마리 키우던 부친은 상호연대보증으로 집도 땅도 거덜 나자, 축사에서 농약을 마시고 목을 맸다. 모친은 그때 충격으로 정신이상자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한 마디로 암담한 오늘의 축산농가의 실상을 파헤친 작가는 항변한다…… IMF도 왜 일어났는지 알아요. 세계 거대 자본이 우리나라를 잡아먹으려고 일으킨 거예요. 고향요? 전 싫어요. 고향 생각하면 자다가도 가위눌려요…….

단편 「불임우(不姙牛)」. 제목은 새끼를 낳지 못하는 암소를 지칭한다. 삼인칭 소설로 주인공 남자, 그리고 친구 경하와 기석이 등장한다. 인공수정사인 남자는 마흔이 넘어 26세의 중국동포여자를 아내로 맞았으나 6개월 만에 여자는 도망가고 혼자다. 서울 가리봉동 교회 목사도, “그런 여자들한테 피해 입은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니, 포기하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의 가족사진에서 과거(갓난아기와 깡마른 사내)를 알지만 여자를 찾고 싶었다. 경하는 젖소가 임신을 못 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면서, 불임우들을 도살장으로 보내려 하자, 남자는 다섯 마리를 집으로 데리고 와 인공수정을 시도한다. 남자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경하는 자신의 불임우들을 소 배달차에 실려 도살장으로 보낸다. 그 틈바구니에, 간통죄에다 폭행죄로 수배 중인 기석은 남자에게 고향을 떠나자고 충동질이다…… “이 소 불임소야, 이 소뿐인 줄 아냐? 저 논도 밭도 다 불임이라고, 대체 심을 게 없잖아, 이젠 아무 쓸모가 없다고…… 농촌은 벌써 끝났어, 불임소야, 불임소”…… 하지만 남자는 동요하지 않는다.

단편 「박제」는 삼인칭 소설이다. 4년 전 민주노조 초대지부장이었던 그는 명퇴를 당한 실업자다. 대인 기피증에다 우울증까지 겪는다. 히키코모리라는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 나날이 난폭해져 걸핏하면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자, 아내는 집을 나갔다. 일찍이 목공예와 박제를 가르쳐 준 부친과 함께 문경에 있는 봉암사에서 서암 스님의 다비식에 참석한다. 부친은 박제작업이 죽은 동물에게 다시 영혼을 불어넣는 것이며, 다비식은 영혼의 고통의 상징인 육체를 벗어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불길을 바라보며 광화문에 수많은 깃발이 휘날리는 전국노동자대회를 상상한다. 그는 신천옹, 일명 나그네새인 알바트로스를 박제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상상의 공간에 침전하여 그 작업에 빠져든다. 부친이 뇌출혈로 타계하자, 부친의 목공예품 가게에 있던 목공예품들을 몽땅 불에 사른다. 퇴직금과 퇴직위로금까지 바닥나고 단전단수가 된다. 정신마저 혼미한 상태에서 나그네새의 박제작업을 마친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과도 같은 나그네새를 공중으로 날려 보낸다. 이는 현실의 질곡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세계를 희구하는 현대인의 고민을 대신하고 있다.

단편 「존재에 대하여」는 일인칭 소설로 그 소재가 매우 특이하다. 화자가 출장을 위해 낮에 집에 온다. 태양을 향해 거실에 앉은 나신의 아내를 발견한다. 만세를 부르듯 두 팔을 들고서. 일몰 이후, 식음을 전폐하여 무기력했다가 일출이면 되살아나, 나신이 되어 환상에 젖는다. 급기야 아내가 밤마다 외출하거나 며칠씩 귀가하지 않는다. 어느 날 낯선 여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새벽에 귀가한다. 시퍼런 멍, 헝클어진 머리, 아내는 술집에서 중년 사내들 앞에서 옷을 벗고 큰절을 올리고 춤까지 추었다고 한다. 사내들은 그런 아내의 행동에 불쾌해 하면서, 아내에게 무차별하게 주먹과 발길질을 했다는 것이다. 다시금 가출한 아내가 나신이 되어 경찰의 보호로부터 인계를 받아, 화자는 아내를 데리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햇빛을 쬐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아내는 다시 가출해 행방불명이 되고, 화자는 고민 끝에 아내가 태어나서 중학교 때까지 지냈다는 폐가를 찾는다. 그 무성한 가시나무 사이에서 부패되어 가는 아내의 시신을 발견한다. 왠지 파리 떼에서 향긋한 향기가 난다. 이 소설은 섬쩍지근할 정도로, 신들린 듯한 병세에서 오직 태양을 향한 한 여성의 집념과 그 생의 마감을 그린 심리소설이다.

단편 「CCTV」는 ‘감시카메라’, 즉 유선텔레비전(closed circuit television)이다. 화자를 당신으로 내세운, 여느 소설에서 보기 드문 이인칭 소설이며 일종의 독백소설이다. 당신은 심한 우울증에 알코올 중독까지 곁들인 정희란 여인이다. 결혼생활 15년 동안 반신불수에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 내는 병간호로 시에서 효부상까지 받았다. 그러나 아무런 보상도 위안도 없이 고독하다. 당신이 혼자서 술을 마시는 이유는…… 그래, 저걸로 날 다 봤다 이거지. 날 감시했다 이거지. 제 엄마 간호 잘 하나 못 하나 감시했다 이거지. 내가 어딜 안 나가나 감시했다 이거지. 개새끼. 내가 지 엄마 똥 치우는 동안 지는 맨날 다른 여자 만나면서 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못 나가게 했다 이거지…… 독백을 통하여 억누르고 있던 인내의 한계가 발화된 동기와 이 소설의 주제가 확연히 드러난다. 거실 벽에 걸려 있는 ‘家和萬事成’이란 액자가 무색하다.

단편 「강아지야, 안녕」은 미신으로 인한 고부간의 갈등을 그린 일인칭 소설이다. 발단은 화자가 털 전체가 까맣고 왕방울 같은 눈동자가 조금 튀어나온 치와와 잡종 강아지를 사 온 데서부터다. 할머니는…… 봄철 나비 중에 노랑나비가 먼저 나타나면 마을에 좋은 징조지만, 만약 흰나비가 먼저 나타나면 동네에 누가 죽는다…… 는 미신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문제는 강아지의 털 색깔이다. 꼬리 끝에 있는 하얀 점이다. 집안의 대소사에서도 개와 얽힌 말썽이 많다. 아내는 검정 염색약으로 흰점을 없앤다. 화자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쉰다. 오랜 인습과 관념이 실생활에 남아 있어 종종 갈등과 마찰이 야기됨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단편 「하루」는 만수 씨의 일과를 샅샅이 클로즈업한 작품이다. 빈틈없는 노동을 달래기 위한 술로 위안을 삼는다. 오이농장인 비닐하우스에서 오이 따기, 조합 공판장에서 오이를 수송하기, 단골집 할매집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기, 앗싸 노래방에서 도우미들의 속성 등 어렵고 고달픈 농촌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단편 「굿소리」는 실재의 굿이 아니라, 오직 농촌의 고령화와 난개발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주인공 성태네는 영감이 죽고 난 뒤 큰 집에 혼자 살면서, 도시로 나가서 맞벌이하는 아들 내외를 위해 그 손자까지 돌보면서 농사를 짓는다. 벼농사를 시작하려고 육묘판 작업을 하면서도 6개월 된 손자를 태운 유모차에서 4시간마다 우유를 먹인다. 마을엔 현수막이 걸려 있다……‘레미콘 공장 설립 절대 반대 00리 주민일동’, ‘기업가 살리려고 농민들 다 죽일 셈이냐 00리 주민일동’…… 동네는 아수라장이 된다. 서명을 받으려는 자와 이를 거부하려는 세력으로 분열되고, 13개 동네 주민들이 시청으로 몰려가 항의한다. 항구적 국토관리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지자체의 선심성 행정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인 셈이다.

단편 「이승에서의 마지막 꿈」은 기구한 운명을 가진 여인의 출산을 그린 삼인칭 소설이다. 주인공은 여자다. 그 남편은 제재소에서 일을 하다가 손가락이 잘렸다. 그 보상으로 집을 짓고 근근이 살아가던 중에 남편은 다시금 오토바이 사고로 의식 불명, 식물인간이 된다. 병간호를 계속하면서 여자는 식당 일을 나간다. 어느 날 끓어오르는 성욕을 주체 못한 여자는 치마를 걷어올리고 팬티를 벗는다. 식물인간인 남편의 몸 위로 오른다. 남편의 남근을 자신의 몸속으로 넣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울면서 밤을 지새운다. 식당에서 늙은 손님들 중에서, 한의사, 치과의사, 무슨 상무, 조합장 무슨 사장 등등에게 술 시중을 들다가 살을 섞는다. 누구의 씨앗인지도 모르나 임신한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사산아를 낳는다. 검은 보퉁이에 싼 채 친정 부모 산소 옆에 작은 봉분이라도 만들어 주고 싶어 한밤중에 산속으로 찾아든다. 이 소설은 부부의 성생활과 사고와 병간호, 그 사이에 성욕에 이글거리는 뭇 사내의 심리 등을 치밀하게 묘사한다.

중편 「세월아, 세월아」는 태생적 고독 속에서 살다 간 남편의 일생을 반추하는 혜자(주인공)의 서글픈 사유, 시집식구들의 숨은 이야기를 파헤친 삼인칭 소설이다. 시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풍산 상리리에 있는 큰 기와집에 씨받이로 들어왔다. 그런데 5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생기지 않았는데, 마흔이 가까운 안주인이 연이어 아들 둘을 낳았다. 시어머니는 쫓겨나야할 처지였으나 주인장의 배려로 눌러앉았다. 그리고 부엌데기로 전락했다. 그러다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는데, 그 바로 서출(庶出)보다 못한 혜자의 남편, 조한재다. 남편은 찬밥신세였다. 두 형, 한수와 한식의 잔심부름, 일꾼들의 심부름까지 해야 하는 머슴이나 다름이 없었다. 남편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무일푼으로 집을 나와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공무원이 되었으며 동학농민혁명 백주년기념사업회 활동도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갑오농민전쟁 농민군 기념상 제막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 남편이 전립선암으로 수술한 후, 발기 불능에 들자, 매우 치욕스럽게 여겼다. 의처증에 시달리다 못해, 혜자를 발가벗겨 놓고서 여성자위기구(남자성기)로 자위행위를 강요한다. 그리고 폭행까지 서슴없었다. 누차에 걸쳐 이런 강요를 거부하자, 남편은 발길질하며 식칼로 죽이겠다며 덤벼들었다. 혜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식칼을 빼앗아 남편의 등과 가슴을 찔렀다. 4년 동안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집행유예로 풀려나서, 남편의 고향집을 찾았으나, 아무도 없는 가운데 추운 날 온기도 없는 썰렁한 곳에서 오직 무릎을 두 팔로 감싸 안고 앉아 있는 노파만 보인다. 노파는 전혀 말이 없다. 혜자는 관리인 내외의 입을 통해 노파가 죽은 남편의 어머니, 바로 시어머니임을 알게 된다. 비로소 이 집안의 가정사를 알게 된다. 부엌에다 보일러 시공을 하려 했으나 지방 문화재라면서 손도 못 대게 하는 가운데 남편의 큰형인 조한수와 조우하게 된다. 형은 동생의 부인인 혜자를 남 보듯 한다. 혜자는 노파와 함께 살 생각을 한다.

소설집 『소도(蘇塗)』에 수록된 단편소설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시간적 배경은 현재이며 지리적 배경은 경북 상주를 중심으로 한 안동 등으로 나타나 있다. 이 소설들의 공통된 특징은 도입부분과 종결부분은 현재 시점(視點)이나 중간부분은 지난 사건을 회상하는 과거들이었다. 더러는 지그재그로 현재와 과거가 빈번하게 교차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 다소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스토리를 끌고 가는 작가의 호흡에 빨려들어 무리 없이 소멸되는 듯하다. 무릇 작가의 입장에서 창작은 기술이자 예술이다. 첫 문장에서 이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되도록 빨리 독자의 흥미를 끌어들이려고 도입부분에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주인공을 어려운 환경, 강한 리얼리즘에 몰아넣는다. 독자는 그 템포와 서스펜스에 젖어 작품 속에 빠지게 된다. 특히 문체상의 테크닉과 예민한 관찰력에 의한 세부묘사가 돋보인다. 작가가 자신의 역량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습작들을 통해, 다각적으로 스스로를 시험한 흔적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이 소설집에서 나타나는 등장인물들은 대개가 불우하거나 소외된 계층, 비정상적인 육체 내지 정신을 가진 농촌사람들이다. 남자는 대인기피증, 의처증, 식물인간, 발기불능, 국제결혼 등이고, 여자는 남편에게 매를 맞거나 가출, 우울증, 외도, 씨받이, 실어증 등으로 집단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거나 인간성이 황폐된 인물이 살아가기 힘이 드는 농촌을 지키면서, 오늘의 실상들, 축산농가의 붕괴, 노령화, 난개발 등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그래서 공감이 가는 주제들을 통틀어, 빼앗긴 생존권, 그 회복을 위한 절규라고 말하고 싶다. 젊은 이 작가의 균형감각을 바탕으로 한 비판적 생명력이 앞으로 어떻게 작품화될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