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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출판사

   세종 & 김종서 군신
 
   저자/역자 : 박충훈(소설가)
   출판일 : 2006.07
   페이지 : 544 ISBN : 8985622579
   판형 : 신국판  
   정가 : 16,000원
 
해당도서 분류바로가기 : 소설, 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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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성군 세종과 명장 김종서



세종이 비록 성군의 자질을 타고났지만, 그 시대의 명신(名臣)들이 없었다면 그저 평범한 임금이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명신과 명장으로 일컬어지는 신하들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자질이 있었더라도 세종임금 같은 성군을 만나지 못했다면, 일찍이 제거되었거나 정치일선에서 밀려나고 말았을 것임을 실록에서 보았다.

세종의 성군 됨의 자질은 곧 인물을 보는 안목이었다. 인물을 적시적지에 배치하여 능력껏 기량을 발휘하게 하는 용인술! 그 용인술은 곧 군신(君臣)간의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서로 간에 굳건한 믿음이 없었다면 성군도 명신도 명장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추천서 / 역사소설의 백미 새로운 지평을 열다





소설가 / 유현종(劉 賢 鍾)



“마상에서 천하는 얻을 수 있지만 마상(馬上)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

이 말은 당태종(唐太宗) 이세민이 한 말이다.

고구려 정벌 전에서 대패를 하고 나자 수나라 각처에서는 민란이 일어났다.

태종 이세민은 아버지 이연과 함께 태원에서 수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마침내 천하를 통일하게 되었다. 당태종 역시 수양제처럼 고구려 정벌을 단행했다가 대패를 했다. 하지만 그는 내치에 힘써 그의 치세 기간 동안 이른바 “貞觀의 治”(정관은 태종의 연호)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찬란한 시대를 열어 명군주로 칭송되고 있다.

그런 태종이 평소 신하들에게 늘 하던 말이 그 말이었다. 태종 자신은 문무를 겸한 지도자로 무예도 출중했다. 천하를 얻은 것은 그 무의 힘이었다. 그러나 천하를 다스리는 데는 이른바 저수량을 비롯한 8대 현신들이 태종을 보필하여 이뤄낸 것이다. 그를 두고 이른 말이 정관의 치다.

조선 왕조뿐 아니라 한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세종대왕 역시 당태종과 마찬가지였다. 마상에서 천하를 얻지는 않았지만 그에게도 정승 황희와 맹사성을 비롯하여 집현전의 젊은 학자들, 정인지, 성삼문 등 쟁쟁한 신하들이 오른쪽에서 보필하고 문무를 겸한 장군 이종무, 김종서, 최윤덕 등이 왼쪽에서 보필하여 성군치세의 빛나는 치적을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작가 박충훈은 한국 소설계의 실력파 중견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첫 장편소설 <강물은 모두 바다로 흐르지 않는다> 이후 두 권의 장편과 <못다 그린 그림 하나> 등 5권의 작품집을 내어 문단의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그의 전 작품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일관된 주제는 고향과 자연을 지켜가는 토착 서민들의 애환과 투박하면서도 진실된 삶의 굳센 모습들이라는 점이다. 슬픈 현실을 살아내는 산골 사람들이나 농민들을 그리면서도 결코 따뜻한 유머를 잃지 않는 것도 박충훈 문학의 특성이기도 하다. 더구나 직접 발로 찾아다니며 산야초를 구하듯 그가 찾아내고 창조해 내는 모든 소설들은 바위처럼 튼실하고 건강한 것이 장점이다.

여러 종류의 소설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역사를 소재로 쓰는 역사소설이 가장 쓰기 힘들다고 말한다. 현대소설은 생(生)의 단면을 그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무기둥을 자르면 나무의 단면이 보이고 그동안 그 나무가 살아온 나이테가 보인다. 현대소설은 바로 그 단면의 나이테에서 나무 전체의 생을 조망하고 무엇을 상징하는가 하는 것을 소설로 써 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역사소설은 생의 단면에서 인생 전체의 의미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소설로 그려야 한다. 또한 그 시대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생활 전반을 망라하여 소설 속에 드러내야만 하는 것이 현대소설과 다른 점이다.

예를 들어 보자. 박충훈의 이번 역사소설은 배경과 무대가 조선 왕조 초기이며 이른바 왕위다툼 때문에 일어났던 비정하고 처절했던 ‘왕자의 난’이 겨우 진정되고 불세출의 명군 세종대왕이 보위에 오른 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은 세종과 장군 김종서이며 작가는 임금과 신하, 세종과 김종서 간의 군신지의(君臣之義)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그 같은 주제를 어떻게 구현해 내느냐 하는 것도 어렵고 중요하지만 국가 지도자인 왕의 일상생활은 어떠하며 그가 다스리는 국사의 내용은 어떤 것이 있을까.

임금은 정치, 경제, 국방, 외교, 사회, 문화 전반의 정책과 집행을 일일이 챙기고 관리해야 하는 막중한 자리에 있는 지도자이다.

더구나 이웃 국가와의 전쟁은 늘 상존한다. 따라서 군왕은 관심을 가지고 상승군의 국방력을 평소에 키워야 하며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손자는 전쟁하지 않고 이길 수 있는 상책 중의 상책을 묘산(妙算)에서 이기는 것이라 했다. 무력으로 맞서는 것은 하책이라 했다.

묘산은 외교를 말함인데 늘 외교로 이길 수는 없다. 대부분은 전쟁으로 간다. 한 나라가 전쟁을 하자면 보통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군왕은 먼저 국민 총동원령을 내리고 비밀 외교전을 펼쳐야 한다. 전쟁 상대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다른 나라에 군사동맹을 제의하거나 원조를 청하기도 한다.

정치 또한 전시체제로 전환하고 국가 경제도 전시(戰時)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군사작전의 마스터플랜을 짜고 그에 맞춰 병력을 운용해야 한다. 이와 같은 모든 것은 최고 통수권자인 군왕이 담당해야 한다. 왕조국가에서 군왕의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래서 군왕이 무능하거나 암우하면 나라가 위기에 빠져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고, 군왕이 빼어난 성군이면 국가는 흥하며 태평성대가 된다. 역사소설을 쓰는 데 어려운 것은 바로 작가가 군왕이 되어 외교전도 펼치고 경제정책도 전시 경제정책으로 바꾸고 그런가 하면 수만, 혹은 수십만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는 대장군이 되어 모든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여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작가는 정치, 경제, 국방,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져야만 훌륭한 역사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제정책을 전시 경제로 바꿔야 한다면 작가는 적어도 <경제원론>이나 <전시 경제학> 같은 전문적인 경제 서적을 읽고 그 자료를 가지고 창작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수십만 군사들을 이끌고 전장에 나서면 작가는 총사령관이 되고 탁월한 전략가가 되어 전군을 지휘해야 하며 치밀한 전술을 구사하여 승리를 이끌어내야 한다. 사실감을 극대화하려면 작가는 군사학에 대한 공부를 미리 해둬야 한다.

전투의 기본은 분대전투라 한다. 분대단위의 전투가 잘 이뤄져야 소대전투, 중대전투, 나아가 대대, 연대, 사단전투가 일사불란하게 잘 이뤄지는 것이다.

1개 분대의 성원은 9명으로 되어 있다. 진시황의 군대도 분대원의 숫자는 10명이었다.

서안의 진시황릉 주변의 지하에는 죽은 시황제가 다시 살아나면 명령일하 들고일어날 수 있는 흙으로 빚어놓은 군사 수천 명이 대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발굴 현장에 가 보면 군사들은 살아 있는 것처럼 분대별로 정렬해 있다.

1개 분대는 10명이다. 고구려 군대도 10명으로 나와 있다. 동양에서는 10명이지만 서양에서는 9명이다. 현대의 군이나 수천 년 전의 군이나 조직체계는 같다고 보면 된다. 전략이나 전술 또한 현대전이라 해서 변한 것은 없다.

변한 것이라면 화기(火器)나 공군력 정도일 뿐이다. 미사일이나 핵폭탄이달라졌을 뿐 전투 양상이나 실상은 변한 게 없다. 그렇다면 작가는 <전술학>을 공부해야 하고 <병기학>도 알아야 하며 <화기학>도 알아야 하며 <손자병법>은 물론이려니와 <나폴레옹 전사>를 비롯한 각종 군사학 서적을 독파하고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현대소설은 공부해 가며 쓰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소설은 끊임없이 공부해 가며 써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는 것이고 작가라 해서 아무나 쓸 엄두를 못 내는 것이다.



나는 박충훈이 처음 쓴 이 역사소설을 읽으며 내심 놀랐다. 평소 그는 탄탄한 서사구조와 스토리텔링 등 작가로서의 역량을 모두 갖추고 있었지만, 역사소설을 처음으로 쓴다고 했을 때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었다. 그러나 그런 기우를 완전히 날려버리고 그는 훌륭한 역사소설을 탈고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지난 시절, 역사소설이 제대로 된 문학적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은 흥미위주의 궁중 염사(艶事)나 환관내시들의 권력쟁투 등 야담적인 이야기를 다루며 어떤 확고한 역사관이나 역사의식 혹은 주제의식을 배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중소설 대접을 받게 된 것이었다.

1970년대 이후부터 한국 역사소설은 새롭게 태어났다. 투철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당대의 대사회적 문제점을 드러내며 현대소설적인 플롯 그리고 인물들의 철저한 캐릭터 구축 등 과거사를 배경으로 할 뿐 현대소설이나 다름없는 소설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

박충훈은 한발 더 나아가 세종과 김종서의 군신지의(君臣之義)에 주제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 새로운 소설 꺼내기의 한 방법이 되었다는 것이다. 계집은 사랑하는 사내를 위해 화장하고 의로운 자는 자기가 섬기는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있다. 그것이 바로 군신간의 의리인 것이다.

왕자의 난이 일어나 혈육간에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벌어지고 있을 때 셋째 왕자였던 세종은 불과 11세의 어린 소년이었다. 세종이 15세만 넘었어도 그 살육전의 회오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다. 세종이 학문을 즐겨하고 칩거한 채 독서만 하며 산 데는 영민한 수재인 데다가 호학(好學)의 성정을 가진 탓도 있지만, 어린 나이에 못 볼 것을 많이 본 터라 자신을 숨기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형들을 제치고 부왕인 태종이 당시 22세였던 세종을 보위에 앉히자 세종은 진심으로 사양했다. 무서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침내 돌다리도 두들겨가며 국사 전반을 챙기고 다스리기 시작했다.

세종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본보기를 보여준 가장 모범적인 성군이었다. 그는 실용의 과학을 중시했다. 측우기를 비롯해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내고 음악까지 체계적으로 연구케 하고 한글까지 창제케 했다. 뿐만 아니라 화약무기 개량에 박차를 가하여 국방력을 높여 미래를 대비했다.

그 같은 업적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용의주도하고 탁월한 용인술에 의해 적재적소에 인재를 두고 운용했기 때문에 얻어진 결과였다. 다시 말하면 당태종처럼 현량한 충신들을 많이 얻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세종의 주변에는 수많은 인재들이 보필했다. 황희나 맹사성 같은 원로 명상들이 버티고, 또한 백두산의 대호(大虎)라던 문무겸전의 김종서와 최윤덕 등이 보필하고 정인지를 비롯한 집현전의 젊은 학자들까지 최선을 다하여 임금을 위해 몸 바친 덕으로 세종치세의 찬란한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특히 김종서는 16세에 과거에 급제하고 환로에 나서 28세 되던 해에 처음으로 세종의 부름을 받았다. 김종서는 세종보다 6세 연상이었다. 강원도에서 흉년으로 농민들이 허덕이는데, 평년수준으로 세곡을 징수하여 지방관들의 수탈이 있다고 말썽이 일자, 정6품인 사헌부 감찰 청년 김종서를 감찰사로 보냈다.

김종서를 천거한 이는 공조판서 맹사성이었다. 성미가 괄괄하긴 하지만 강직하며 청렴한 청년이라 하자, 세종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김종서에게 신뢰를 보냈다. 그때부터 두 사람간의 군신지의는 맺어졌으며 순치지간(脣齒之間)이 되었다. 순치란 입술과 치아 사이란 말이다.

그만큼 세종은 김종서를 믿고 의지했으며 김종서 또한 어버이 모시듯 충성을 다했다. 세종은 눈감을 때까지 단 한번도 김종서를 의심한 적이 없었고 김종서 또한 주상의 뜻을 거스르거나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모셔왔던 주상이 내세운 어린 단종을 쫓아내고 보위를 찬탈하려 넘보던 숙부 수양대군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김종서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으나 불사이군한 충신의 본보기가 되었다.

박충훈의 이 소설은 바로 임금인 세종과 신하인 김종서 간에 이어졌던 군신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를 감동적으로 그린 역작이다. 흙 위에 떨어진 이삭이나 낱알 하나도 버리지 않고 거두어들이는 이 작가의 성실성과 역사 소설가로서의 안목과 능력을 두루 갖추었다는, 큰 역량을 증명할 수 있는 노작이라 할 만하여 많은 독자들의 정독을 권하는 바이다.



2006년 6월 6일

추천사 / 소설가·유현종(劉賢鍾)


목차

추천사 / 소설가·유현종(劉賢鍾)

책머리에

동방에 뜨는 별

서설이 내리다

대마도 정벌

출정(出征)

뿌리 깊은 나무

현군(賢君)과 현신(賢臣)

성군의 길

천심(天心)과 인심(人心)

북방의 여진족

맹장 최윤덕

제1차 야인정벌

개선(凱旋)

문신과 무신

필연적인 만남

벗을 수 없는 짐

충효의 길

백두산 호랑이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유구한 인보법

반간지계

훈민정음(訓民正音)

황제와 왕

성군의 시대는 가고

다시 북방으로

어린 임금 단종(端宗)

범과 호랑이

여진족의 꽃

장백산에 기를 꽂은 호랑이

계유정난






서평



성군 세종과 명장 김종서



세종이 비록 성군의 자질을 타고났지만, 그 시대의 명신(名臣)들이 없었다면 그저 평범한 임금이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명신과 명장으로 일컬어지는 신하들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자질이 있었더라도 세종임금 같은 성군을 만나지 못했다면, 일찍이 제거되었거나 정치일선에서 밀려나고 말았을 것임을 실록에서 보았다.

세종의 성군 됨의 자질은 곧 인물을 보는 안목이었다. 인물을 적시적지에 배치하여 능력껏 기량을 발휘하게 하는 용인술! 그 용인술은 곧 군신(君臣)간의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서로 간에 굳건한 믿음이 없었다면 성군도 명신도 명장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과인의 뜻을 종서가 알고, 종서의 뜻을 과인이 아오. 과인에게 있어서 필생의 염원이며 숙원인 이 일은 과인만 있어도 아니 되고, 종서만 있어서도 이룰 수 없는 일이오. 오직 과인이 있고, 종서가 있음에 이룰 수 있는 대업이라는 것을 명심하오!』





역사소설의 백미 새로운 지평을 열다



1970년대 이후부터 한국 역사소설은 새롭게 태어났다. 투철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당대의 대사회적 문제점을 드러내며 현대소설적인 플롯 그리고 인물들의 철저한 캐릭터 구축 등. 과거사를 배경으로 할 뿐 현대소설이나 다름없는 소설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

박충훈은 한발 더 나아가 세종과 김종서의 군신지의(君臣之義)에 주제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 새로운 소설 꺼내기의 한 방법이 되었다는 것이다. 계집은 사랑하는 사내를 위해 화장하고 의로운 자는 자기가 섬기는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있다. 그것이 바로 군신간의 의리인 것이다



박충훈의 이 소설은 바로 임금인 세종과 신하인 김종서 간에 이어졌던 군신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를 감동적으로 그린 역작이다. 흙 위에 떨어진 이삭이나 낱알 하나도 버리지 않고 거두어들이는 이 작가의 성실성과 역사 소설가로서의 안목과 능력을 두루 갖추었다는, 큰 역량을 증명할 수 있는 노작이라 할 만하여 많은 독자들의 정독을 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