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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출판사

   인사동 블루스
 
   저자/역자 : 김재순(동아문화센타 강사)
   출판일 : 2003.06
   페이지 : 271 ISBN : 8985622374
   판형 : A5  
   정가 : 8,000원
 
 
해당도서 분류바로가기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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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소설 인사동 블루스 중에서

남편 버리고 뛰쳐나와 고향에 술집을 내다니, 지하에 계신 아버지는 망할 년이라고 욕하실 것이다.

그녀는 점잖은 파평 윤씨 아닌가. 술집이 뭐가 어때서 그러지. 그녀는 고무줄이 되고 싶었다. 놀이하듯 누구나 밟고 지나가게 하고 싶을 만큼 외로운 걸,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녀를 밟을 때마다 간지럽고 슬프고 노래하고 데굴데굴 구르고 온갖 자극을 느끼며 치열하게 살고 싶었다.

누군가는 내일 찾아올 고난이 궁금해서 살아간다고 한다. 지현도 세파를 겪으며 이젠 무서운 것이 없다.

문을 열자 축축한 냄새가 확 끼쳐왔다. 오디오의 버튼을 눌렀다. 러시아 노래 ‘백학’이 흐른다. 어디선가 대숲을 헤집는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인사동 블루스의 커피가 맛있는 것은 좋은 원두를 사용하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커피를 갈아서 내기 때문이다.

그 커피 맛은 소문이 퍼져 점심식사후에 이곳을 찾는 손님이 많다.

인사동은 그녀가 숨쉬는 커다란 자궁이다. 인사동 뒷골목의 한정식 집 ‘옥경’으로 단체 손님이 주룬히 들어갔다. 그 집으로 들어가는 중년의 남자들 중 한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지현은 목례한다. 인사동 블루스의 커피를 즐겨 마시는 손님이다. 단골손님들은 지현의 커피 만드는 솜씨를 인정했다.

고등학교 동창회 모임도 있고 문학상 시상식을 마친 뒤에 뒤풀이로 몰려오기도 했다. ‘인사동 블루스’의 커피가 워낙 유명해서 점심 때도 손님이 찾아온다. 커피를 팔기 위해 정오부터 문을 열기엔 오히려 적자지만 찾아오는 손님을 거절할 수가 없다.

오후에 찾아오는 술손님의 대부분이 점심때 오는 손님들과 겹치곤 했다. 지현은 단골로 오는 화가들의 개인전이나 초대전에는 꼭 참석하고 화환을 보내 인사를 했다.

동덕미술관, 터, 덕원, 코스모스, 인데코, 정남 아트갤러리 등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지현은 일일이 기억해 두었다. 그들은 뒤풀이를 ‘인사동 블루스’에서 가졌고 화상들의 거점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거나하게 취하면 ‘아아, 으악새 슬피우우는’으로 시작해서 하모니카나 아코디언이 합세하고 지현의 풍금반주에 맞춰 손뼉을 치며 어깨춤을 추기도 했다.

분위기가 고조되면 각자의 자리에서 일어나 술잔이 오가고 좌석이 뒤섞이며 한데 어우러져 칠렐레 팔렐레 어깨동무를 하고 어느 땐 골목 밖으로 진출했다.

단골의 경우에는 영원히 손님을 놓치고 말기에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땐 손님에게 계산하기 좋게 빈 병은 탁자위에 올려놓고 가게 문을 닫고 가라고 열쇠를 내민다.

그들은 열쇠를 받아들고 지현을 흔쾌히 보내 줄 때도 있다. 다음 날 가게에 나와 보면 술에 취해 소파에 머리를 박고 자는 사람도 있고 더러는 가버리고 술병만 뒹굴 때도 있다.

전업작가일 경우 그 물질적 비참함은 말할 수가 없었고 어쩌다가 원고료가 생겨 외상값을 갚으려고 달려오지만 모자라기 일쑤였다. 대한민국에 과연 문화정책이 있는지 궁금했다.

지현은 마대걸레로 마루를 닦고 난 후에 냉동실에서 북어를 꺼내 국을 끓이고 새우잠이 든 가난한 소설가를 흔들어 깨웠다. 손님을 친동생이나 친구처럼 대하는 마음 때문에 덕을 본 적도 있다.

사년 전 집주인이 보증금과 월세를 한번에 삼십 퍼센트나 올렸던 적이 있었다. 단골손님인 문화부 기자들이 몰려가서 집 주인과 적정선에 합의를 보아 준 적이 있다. 그들은 지현을 친누나처럼 따랐고, 그녀도 그들이 몰려오면 감자를 강판에 갈아 튀김가루와 함께 개어놓았다가 푸짐하게 안주를 만들거나 메론을 보기 좋게 깎고 대구포와 치즈를 접시에 곁들여, 그녀가 선심을 쓸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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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