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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18 조회수 2459
작성자 임헌영(문학평론가, 중앙대 교수) () 작성일 2002.06.05
제목 순교의 미학과 그 문학적 대응 -한상윤장편<<소설 김대건>>에 부쳐-

1. 정통. 전통, 그리고 외래 사상의 유입
종교전쟁을 치르지 않은 나라, 어떤 이교도와도 공존할 수 있는 나라란 점에서 한국은 가히 영국. 프랑스 등을 능가하는 문화민족이구나 싶기도 하다. 선진국을 뽐내는 서구 열강국들이 신앙의 자유, 믿음이나 종파가 다른 이웃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되기까지 얼마나 비인간적인 피를 흘렸던가를 보노라면, 그리고 지금도 그 문제 때문에 야만적인 전투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과연 우리는! 관대하달까, 주체성이 약하달까, 비지성적이랄까, 아니면 외래 사상에 잘 적응하는 순발력이 탁월하달까?
혹자는 기독교 유입 초기의 순교사를 보노라면 우리도 종교전쟁에 못지않는 비극을 치뤘다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기독교가 심화될 때까지 서구 및 세계사에 나타난 여러 순교의 참극이나, 그 이후 각종 교파에 얽힌 여러 전쟁을 보노라면 우리는 종교전쟁은 없었으며, 앞으로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종교전쟁은 없었지만 이념의 노예로서 지구상에서 가장 치열하고 잔혹한 전쟁을 겪은 사실을 상기하노라면 좀 어리둥절해진다. 인생관. 세계관. 생활 풍습.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다른 신앙은 전혀 사회적. 민족적 갈등의 요소가 안 되는데 이보다 덜 근본적인, 다른 나라에서는 얼마든지 공존하는 이데올로기 문제로 우리는 왜 그렇게 맹렬하게 다퉜으며 지금도 흑백논리로만 판단할까.
민족 주체성에 입각한 정통성의 허약함이 아마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이 이닐까 싶다. 정통성이 창출해 낸 확고한 민족 공통성으로서의 전통이 단단하지 않으면 오히려 자기 방어력으로써 외래 사상을 극력 배격하나 이내 그 사상이 유입되고 나면 기존의 가치관을 뒤흔들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한국사에서 불교, 유교, 기독교, 그리고 마르크시즘이 다 그런 절차를 거쳐 유입, 확대. 심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근대사 이후 한국사에 중대한 영향력을 구사하고 있는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은 우리 민족의 정통성 모색이란 차원에서도 보다 근본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과제들이다. 약 150년의 간격을 두고 도입된 이 두 사조는 기존의 가치 체계에 정면 도전한 외래 사조란 점과, 둘 다 혹독한 탄압 아래 순교자를 양산했다는 점에서 너무 닮았다.
카톨릭 순교사를 읽노라면 마치 현대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를 시대적 배경만 바꿔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비슷한 양상이 전개된다. 이렇게 두 현상을 대치시키는 것이 보수적인 신앙인에게는 어쩌면 신성 모독처럼 느껴질지 모르나, 순교의 의미를 민족 주체적 관점에서 보다 거시적으로 접근하자면 세계사와 민족사와 사상사적 교직(交織) 현상을 고려해야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함에서 임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이 말은 곧 그간 순교를 다룬 여러 논문이나 소설들이 어떤 관점을 취했던가에 대한 반성의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는 의도이기도 하다.
널리 알려졌듯이 한국 카톨릭 순교사는 파리 외방전교회 신부 샤를르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1874)가 기본 텍스트로 작용하여 그 이후 거의 대부분이 이 기록의 가치관을 따르고 있다. 한국에는 머문 적이 없었던 달레는 프랑스측 자료를 중심 삼아 미신과 몽매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좋은 가문의 영재들 가운데 나온 천주교인의 우월성을 부각시키고 있는데, 이런 관점은 기독교 전파의 선구성으로 이어져 유광렬의 <<한국 천주교회사>>(1949-75)에서는 카톨릭 곧 선구와 문명, 반 카톨릭은 몽매와 야만이라는 논리로 전개되어 같은 기독교 중에서도 천주교의 우월성을 주장할 지경에 이른다. 역시 신앙 옹호론적 입장인 최석우의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1982)는 앞의 두 저서보다는 포용력이 넓은 사관으로 접근했지만 기본 시각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좀 거칠게 말하면 여기까지의 연구들은 기독교 전파와 순교사를 다룸에 있어 기존의 민족 주체성이나 정통적 시각보다는 신앙적 관점과 자세를 우선시키고 있다 하겠다.
이들과는 달리 문화사적인 연구방법이 일본 야마구치(山口正之)의 <<조선 서교사>>(1967) 등에 등장하지만 역시 민족 주체사적인 관점은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한국에서 카톨릭 순교사가 민족사적 시각으로 재조명된 계기는 조광의 <<한국 천주교 200년>>(1989)부터라는 게 정평이다. 그는 조선조의 가혹한 천주교 박해 원인을 당쟁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한 <황사영 백서>나 달레 - 유홍렬의 관점을 탈피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서세동점(西勢東漸)에 대한 위기의식과 전통적인 가치관의 갈등으로 풀이한다.
순교사에 못지 않는 시비의 소지인 정약용을 비롯한 초기 사대부들의 ‘배교’에 대해서도 조광은 이들이 애초부터 학문적 관심과 보유론적(補儒論的)자세로 서학에 접근했던 점을 상기시키며 굳이 ‘배교’랄 것도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이 점은 종교계에서 많은 시비를 야기시킬 여지가 있는 쟁점이다. 이와 병행하여 조광은 양반 신자들만이 아닌 중인 이하 상놈 신자들의 전도였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당시 한국의 전통적 가치관이었던 효(孝)에 대하여 서구 교회가 이해하지 못했던 점은 오히려 교회측이 반성해야될 점이라고도 지적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순교 행위 그 자체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점이다. 신앙의 차원으로만 접근하던 관점을 벗어나 개성과 인간성의 발견이 결여되어 있었던 조선조 사회에서 자신의 양심과 인격과 가치관에 따른 신념으로 생명도 버릴 수 있다는 조광의 견해는 매우 예술적이다. 이런 조광의 연구 업적은 이원순의 “한국 신학을 위한 구원사 연구와 한국 사학을위한 인간사 연구의 두 국면으로 전개”(<한국 천주교회사 연구 소사>)되어야 한다는 시각과 같은 맥락으로 매우 중요한 문학적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2. 소설사 속에서의 순교
카톨릭과 한국사와의 첫 만남은 임진왜란(1594) 때 일본 종군 신부였던 폴투갈인 세스페데스로 알려져 있다. 일본으로 연행해 간 한국인 포로들에게 전교를 했겠지만 그들은 한국사에는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말았다. 이후 이수광(1563-1628), 허균(1569-1618)의 베이징으로부터의 학문적 소개 접근과정을 거쳐, 병자호란1636-7) 때 볼모로 베이징에 머물렀던 소현세자의 서학 접근을 그 효시로 삼으나 귀국(1645) 직후 사망하므로 써 그 영향력이 행사될 수 없었다. 이후 이벽(1754-86), 권철신(? -1801). 일신 형제. 정약전. 약종(1760-1801). 약용(1762-1836) 형제에 의한 연구와 실천의 단계로 접어드는데, 역사에서는 이 시기부터를 순교의 시대로 풀이하고 있다.
이벽의 권고대로 정약용의 매부 이승훈(11756-1801)이 베이징에서 서양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귀국한 1784년은 한국 카톨릭의 기원이자 객관적인 의미에서 순교 시대의 개막이었다. 명동 김범우 집을 교회 삼아 이벽. 귄일신 등과 함께 전개했던 초기 카톨릭의 지하활동은 교회사학자들의 주장대로 자생적인 신앙의 시대로, 강압적으로 신앙을 협박하는 폭력 앞에서도 기독교를 부인하며 죽어갔던 중남미와는 흥미있는 비교연구의 과제가 됨직하다. 가성직(假聖職)시기로 불려지는 이 때에 한국에서는 권일신. 방지거를 주교로 선출코 이승훈 등이 신부가 된 이른바 공화제 선출 성직이 실현되었다. 이 시기의 대탄압은 신해사옥(辛亥邪獄.1791)이 그 절정이었다.
정통 카톨릭으로부터 이런 신앙 행태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 이후 중국인 주문모 신부의 입국(1795)과 순교(1801. 辛酉邪獄.이승훈. 이가환. 권철신. 정약종 등 3백 여 순교)과 황사영 백서사건 등의 격변 속에서도 선교사와 성직자가 없는 포교와 신앙이 계속되던 중 교황청이 파리외방전교회에 한국 사목을 전담시켜 조선교구를 설정한 것은 1831년이었다.
이후 프랑스 신부들(모방, 앙베르, 샤스탕)의 입국과 순교(己亥邪獄. 1839),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된(1845) 김대건이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귀국 순교(1846), 군함까지 동원된 각종 소요가 계속되다가 1866년 다시 탄압 강화로 국내 신자와 9명의 프랑스 신부를 처형되는 등 순교의 역사는 지속되다가 1882년 한미수호조약을 분수령으로 그 막을 내렸다. 이 순교의 시기는 민족사적으로 보면 봉건체제에 대한 국민대중의 저항적 의지를 담아내는 요소와 함께 제국주의 열강으로부터 국권을 빙자한 자기 계급의 권력을 수호하지 않을 수 없는 수구파들의 논리가 맞물려 있었다.
한국 카톨릭 순교문학은 바로 이 시기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는데 그 초점은 단연 김대건 신부일 수밖에 없다. 그간 단편적으로 부각되어 왔던 김대건신부에 대한 총체적인 확대경으로서 한상윤의 장편 <<소설 김대건>>은 작가의 고백처럼 신앙적인 차원의 순교자로서만이 아닌 “망국적인 폐쇄 정치에 항거한 선구자적인 혁신세력”의 시각으로 실록화하고 있다. 작가는 창작 동기를 이렇게 요약한다.

성실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누이동생으로서 살았던 가장 여자다운 여자들의 삶, 그러나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그녀들의 삶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역사의 한 굽이에서 가난하고 힘 없는 민초들의 삶이, 배부르고 등 따스운 지배층의 무모함이나 혹독함에 희생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너무도 다반사로 일어났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요 실재인물들은 당시 양반 계급에 속해 있었음에도 조정의 망국적인 폐쇄 정치에 항거한 선구자적인 혁신세력들이다.
<작가의 말>

<<소설 김대건>>에서 작가는 두 가지를 겨냥한다. 하나는 순교자의 생애와 활동이 민족사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란 점과, 다른 하나는 격변 속에서 당대의 민중적 삶의 정 기준치가 되는 여성들의 삶은 어떤 것이었느냐는 점이다.
선구자적 역할로 작가는 정약전 형제를 비롯한 이벽, 이승훈, 김대건에 이르는 초기 가톨릭 순교사의 명망성 있는 실존 인물들의 생애를 실록화 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실록이기 보다는 문학적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 - 이벽의 후처 정씨, 정약종의 아내 유소사와 그 딸 동정녀 정정혜, 김대건의 어머니 고씨 등등의 삶은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있는 부분이다.
선구자들의 삶은 이미 역사학이 다 밝혀낸 부분들이라 굳이 여기서 그 줄거리를 소개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앞에서 소략하게 개관한 한국 가톨릭 순교사가 모든 순교소설의 기본 줄거리와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다.
예를 들면 가공인물로 구성된 박계주의 <<구원(久遠)의 정화(情火)>>는 남녀의 사랑을 통한 신앙 의식에로의 접근을 다루고 있는데, 그 시대적 배경은 1860년대이다. 이 소설은 한국인 신부로서 “최초의 순교자”인 김대건을 비롯한 여러 순교자들의 모습을 부각시키는데, 시메온이란 남장 여성을 통하여 한국 순교사에서는 처음으로 신앙 그 자체보다 사랑에 의한 종교에의 접근 동기를 제시하고 있다. 다분히 통속적인 이 소설은 대중문학답게 시메온이 윤신부를 사랑하게 되어 그 뒤를 따라다니다가 결국 형장에 서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세속적인 사랑의 단계를 넘어선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승화되었다는 것으로 끝맺는다. 순교소설에다 사랑이란 당의정을 입힌 이 소설 이후 카톨릭 소재 작품은 거의 역사적 실록과 실존인물을 주로 다루고 있다.
이런 여러 작품 중 한상윤의 <<소설 김대건>>도 가장 실록적이라 할만하다. 김대건의 어머니 입을 통하여 작가는 당시의 카톨릭 교리를 이렇게 풀이해 준다.

“.......제가 알고있는 천주의 뜻은 그런 분들이 생각하는 것 하고는 조금 달라요.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다 같은 천주의 자식이기 때문에 형제같이 지내야 한다. 인간은 인간의 인품이나 재능. 덕행을 사랑할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창조된 동일한 피조물이며 사람된 위(位)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랑해야 된다’고 ‘신명초행’이라는 책에 씌어 있답니다. 모든 사람은 천주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곧 천주를 미워함이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곧 천주를 사랑함이다, 그 말씀이지요. 사람을 양반이니 중인이니 양인이니 천민이니 하고 위아래를 구분짓는 신분 제도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거지요. 다 같은 형제, 다 같은 사람이다, 그거지요........”
상권 35쪽.

김대건 집안은 증조부가 10여 년 옥살이를 지낸 것을 비롯하여 조부의 제사도 안 지낼 정 도로 서학과 인연이 깊어 “머슴들, 행랑 어멈들, 노복들 해서 모두 전답 문서 하나씩 나누어” 줘서 “자유스럽게 일하고 천주 봉양하고 살아라”는 처분을 내린 뒤였다고 고씨는 말하는데, 이 대목은 당시 천주교가 지녔던 선구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분 해방과 경제개혁을 동시에 수행하려했던 이 변혁의 전위대로서의 초기 지식인 천주교도들은 민족사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가능케 해준다. 더구나 당시 관료층은 중국인 신부 주문모를 처단하면서 “감히..... 중국인의 목을 치라니요”라는 사대의식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대목으로 유추할 수 있듯이 한참 시대를 역행하고 있었다.
작가는 카톨릭 순교자들의 선구성에 지나치게 집착하기 보다는 오히려 실록적인 기록성에 중점을 두면서 서술해 나가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나칠 수 없는 대목 중 하나가 정약용에 대한 인간적인 평가를 엿보게 만드는 부분이다. 역사나 기존의 소설은 다산이라는 사상사적인 거대한 산맥을 다룸에 있어서 대개 카톨릭 신자일 수밖에 없으며, 그 배교 조차도 미화 혹은 설득력 있는 옹호론으로 흐르기 십상이었다.
한무숙의 소설 <<만남>>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구중서가 해설 <진리와 약한 인간의 만남>에서 말했듯이 이 작품은 “하나님과 인류의 소통”에 주제를 두고서 그 주인공으로 다산을 내세우고 있다. 소설은 다산의 학식과 인격의 고매성을 전제로 하여 신앙심에서도 그에 못지 않는 품성을 발휘한 것으로 평가한다. 소설 <<만남>>은 다산이 유배지강진에서 풀려나 이승훈 등과 함께 순교한 형 약종의 무덤을 찾아 인사를 드린 후 중국인으로 조선에 와있던 유방제 신부로부터 성사를 받고 75세의 생애를 마감하며 배교를 후회한 것으로 끝맺고 있다. 실증주의적 시각이든 신앙적 관점이든 이 대목은 논의의 여지가 많겠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고 다만 여기서는 한상윤 소설의 다산관과 대비시켜 보고 싶을 뿐이다.
<<소설 김대건>>에서 한상윤은 국내외 순교자들을 매우 긍정적인 시각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외국인 신부들은 피신해 버린 자신들을 체포하려고 한국인 신도들이 갖은 고문과 죽음으로 내몰리는 참담함을 보고는 자진 출두하는 살신성인의 모습으로 그려준다(하권 121 - 122쪽).
이들 순교자들의 묘사에 비하면 정약용을 부각시키는 작가의 시각은 매우 객관적인 입장이 된다. 남편 정약종이 처형 당한 뒤 아내 유소사가 어린 아들(하상. 7세)과 딸(정혜. 5세)을 데리고 피신 중 허기에 지쳐 양근 마재의 정약용 집으로 먹을 것을 얻으러 갔을 때의 장면은 이 소설에서 리얼리즘적 요소가 돋보이는 대목이자 소설문학이 도전할 수 있는 역사의 재해석. 재평가의 탈환이기도하다. 흥부가 놀부 집을 찾았을 때의 대목을 연상하는 이 부분은 당시 카톨릭 탄압상이 얼마나 가혹했던가를 반증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 세 식구가 후줄그레한 보따리들을 끼고 마당으로 들어서기가 바쁘게 정약용의 아내는 고개를 홰홰 저었다.
-- 여기를 어쩌자고 찾아오셔요? 대가 어느 때인데 끼리끼리 몰려 다니느냐 말예요. 흩어져야지. 이름도 성도 바꿔야 할 판국에 씨는 찾아서 뭣하자는 거예요?
(....중략....)
‘오냐, 알았다, 알았어. 내 서방도 느 서방처럼 위태로운 일을 당할 때마다 천주를 버리마고 약속을 했으면 더러운 목숨 부지는 했을 테다만 내 다시는 더럽고 치사한 네 꼴 안 보마, 안 봐. 하지만 오늘 당장에 이 어린 자식들 창자는 채워 주고 볼 테다.’
하권, 33-35쪽.

물론 이 때 다산도 귀양 10년째로 천하태평은 아니었지만 형제끼리 위기 속에서 이런 갈등을 통하여 작가는 민중들의 삶을 순교에 못지않는 의미로 읽어내려 시도한다. 나중 성장한 딸 정혜가 숙부를 비난하자 유소사는 그 박학과 국가적인 기여도를 들어 변호하지만 그 속내에는 역시 시동생에 대한 야속함과 지식인이 지닌 이중성에 대한 불신감이 도사리고 있다.
작가 한상윤은 이런 인간다운 면모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자 김대건 일가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준다. 우선 김대건이 얼마나 인간적인 면모를 지녔던가를 여러 장면을 통하여 보여주는 한편 그의 어머니 고씨가 갖은 고난 속에서도 결코 인간미를 저버리지 않은 여인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더구나 김대건의 동생을 “전라도 정읍 땅, 어느 대갓집의 머슴”으로 들여 보내 “죽은 듯이 산 속에 묻혀 살”게 만든 고씨의 삶의 행적은 그 자체가 우리 문학사에 그리 흔하지 않은, 한국 여성의 전범처럼 전해오는 신사임당에 뒤지지 않는 민중적 어머니상의 한 전형이 될 법하다.
고씨를 둘러싸고 그 집안 개구녕받이 계집종 조아기와 친정 머슴 출신으로 관가의 끄나풀이 된 봉이, 정혜를 잠깐 스쳐간 남정네 등등 숱한 인간상들이 작가의 솜씨로 우리 시대에도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것 같은 실감으로 다가서고 있다는 점이 이 소설의 보람을 보태준다. 삶 그 자체로서의 신앙을 찾는 작업이야말로 작가의 몫이리라.

3. 역사적 평가와 문학적 재해석
단순화시켜 말하면 순교소설이란 신앙적 차원에서 실록의 기법으로 차분하게 정리해 내는 게 그 첫 단계일 것이다. 한국문학은 그 동안 역사학적인 실증의 부족과 사료의 빈곤으로 이런 일차적인 순교소설도 창작하기 어려운 처지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간 카톨릭 순교소설로는 위에서 언급한 박계주. 한무숙의 작품 및 이 루갈다의 전기소설인 노순자의 <<누이여 천국에서 만나자 - 동정녀 유요한과 이 루갈다의 순교소설-->>와, 서기원의 <<조선 백자 마리아상>> 등이 있다. 노순자가 전기적 소설로 순교에 초점을 맞췄다면 서기원의 작품은 허구와 역사적 실존이 뒤얽힌 루카치가 말하는 근대적 역사소설의 형태를 취한 소중한 작품의 하나이다.
특히 <<조선 백자 마리아상>>은 이 계통의 다른 소설과는 달리 신앙을 이념형이나, 선구자적 개혁의지 등에 못지 않게 당대의 민중적 삶의 현장으로부터 솟구친 것으로 풀이했다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 작가는 개인적으로 남인의 맥을 잇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를 한 시대의 개혁 의지의 전위대로서의 지식인상으로 부각시키는데 전혀 인색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기원은 이 소설에서 도자기공의 생생한 삶의 현장감에서 우러나는 천주교를 향한 신앙심을 추출해 냈다는 점에서 가히 독보적이라 하겠다.
가공의 인물 사기장이 김신봉을 통하여 당대의 석학 정약종. 이가환 등 실존인물을 부각시킨 이 소설은 순교의 의미를 배교행위를 통해 음각시키는 수법을 취하고 있다. 두 지식인이 탄압 앞에서 우유부단하거나(다산), 도리어 관료가 되어 보다 가혹하게 탄압에 앞장 서는 것(이가환)과 마찬가지로 옹기장이 김신봉도 신앙을 가질 때와 배교할 때를 적절히 가려 자기 잇속을 챙길 줄 아는 모습으로 부각된다. 그러나 끝내 이가환이 신유사옥 때 배교치 않고 순교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김신봉은 신도와 비신도 양 쪽으로부터 다 배척 당하다가 그 괴로움을 떨치고자 자신을 천주학장이로 죽여 달라고 좌포청으로 자진해 갔으나 배교자 명단에 올라 있어 강제 방면 당하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난다.
순교소설은 궁극적으로 왜 죽였으며, 왜 죽어야만 했을까에 대한 인간 실존의 문제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한상윤은 김대건의 사형 집행 원인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요약한다.

“임금님(헌종)에게 김대건을 살려 주도록 하자고 관원들이 여러 차례 청원했었다더군. 나라를 떠나 외국인과 통한 것은 죽을 죄이지만 정통한 외국어 실력이며 훌륭한 인재가 되어 귀국했다 해서 말이야. 그런데 문제가 크게 된 것은 프랑스에서 보내온 문책서에 조정이 잔뜩 긴장해 있던 판국에 김대건이가 프랑스가 어서어서 완강히 문책하기를 바라는 글을 썼다는군. 그러니 김대건을 살려 두었다가는 프랑스에게 어떤 보복을 받을지 두려웠던 거지. 김대건을 사형에 처하지 않으면 조정의 나약한 면모를 드러내는 꼴이 되고, 분쟁을 일으킬 좋은구실이 된다는거지.”
하권, 244쪽.

조아기의 남편 이서방이 장터 주막에서 줏어들은 말로 처리한 작가의 의도는 아무리 닫힌 사회일지라도 민중들의 말(소문)이 곧 진리임을 넌지시 내비치고자 함에서일 것이다. 사실 이 대목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구절이다. 처형의 원인을 당쟁으로 풀이하는 예가 가장 많은데 비하여 한상윤은 국제정치 역학 관계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이 대목에서 간파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상윤이 순교를 민족 주체사관에 입각하여 정립시켰다고 까지는 볼 수 없고, 다만 기존의 신앙 위주의 일차원적인 작품들과는 달리 다양한 민중들의 삶과 제국주의적 침략 의도와 맞물렸던 당시 세계사적 상황을 주막집 유언비어로나마 귀띰 해 준 것으로 작가는 그 소임을 감당하고 있다.
순교를 한국관료의 무지 몽매의 소산으로만 보는 흑백 논리적 관점으로부터 탈피해야 하는 것은 역사학과 종교사학은 물론이고 문학도 절실하기는 매한가지다. 한상윤은 이 절실성에 한 발짝 정도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이 돋인다.
순교문학은 여기서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신앙을 지고의 가치관으로 고착시켜 인간의 내면 세계를 천착하지 않고 외부의 행동만을 묘사하노라면 순교소설은 실록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세계적인 카톨릭 작가인 엔도 슈사쿠(遠藤周作)는 <<침묵>> <<위대한 몰락>> <<여자의 일생>>등을 통하여 일본에서의 순교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외국인 신부의 순교 조차도 신앙적으로 미화만 시키지 않고 여러 가지 측면으로 그 의미와 평가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예컨대 순교에 대한 절대적 가치 평가는 도리어 그 자체를 하나의 우상 숭배 행위로 변질되지는 않을까, 순교로 과연 신도들은 구원 받을 수 있는가, 또 그들을 구원해 주었기 때문에 자신도 구원 받을 것인가, 행여나 후진국에서의 전도와 구원 활동으로 주교직에 오르고자 하는 세속적인 야망은 없었던가, 과연 순교로 그 나라의 포교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쳤는가 등등 온갖 문제들을 다 제기하고 있다. 말하자면 인간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 보듯이 외국 신부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현미경을 들이댄 것이다.
이제 우리의 순교소설도 새로운 발돋움을 할 때가 되었다. 흑백 평면도에서 칼러 입체도의 신앙심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시각의 전환은 문학만이 지닌 특권이자 의무일 것이다.한상윤의 <<소설 김대건>>이 바로 그 전환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