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비소설 시집 경영|학술 아동학습 건강|종교 신간목록
입금계좌번호
국민은행 814-01-0408972
뿌리출판사


 

    

  - 뿌리 출판사의 저자와의 만남 게시판입니다
- 해당 게시판의 글읽기는 누구나 가능하지만 글을 쓰거나 메모를
  남기기 위해서는 로그인(회원가입)을 하셔야 합니다.
 
  - 비 적절한 내용(욕설, 비방, 상업적 목적등)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내용보기] 목록보기 답변하기 수정하기 삭제하기
번호 92 조회수 1832
작성자 추천사 / 강동문인회 회장 김 병 관 (1111) 작성일 2011.09.29
제목 자아실현을 이루려는 노력의 산물 / 독도를 지킨 초병의 노래

강동문인회 회장 김 병 관
자아실현을 이루려는 노력의 산물

변우택 선생의 제2시집 ‘독도사랑 30년’의 출간 소식에 적잖이 놀랐다. 변선생은 강동문인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지만 아직 한국문인협회에 등록된 등단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등단한 지 십여년을 넘긴 시인들 가운데서도 첫 시집을 못내는 경우가 허다한데 벌써 두 번째 시집을 펴낸다니 선생의 시심과 창작열에 경의를 표한다. 이는 선생의 자아실현 욕구가 강렬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인간의 욕구 가운데 최상의 가치는 자아실현이라고 한다. 물론 자아라는 개념 자체가 워낙 형이상학적이라 정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자신의 잠재능력을 끄집어내어 사회적 공헌을 하였을 때 붙여주는 것이 아닐까. 당연히 스스로의 만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볼 때 선생은 자아실현에 한 걸음 다가선 셈이다. 그 이유는 젊은 시절 군대생활을 하였던 독도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였으니 말이다. 먼 후일 선생의 후손들이 할아버지가 쓴 시집이 당시의 국가적 이슈였던 독도 문제에 관한 역사적 기록물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매우 자랑스러워하리라.
우리 역사에 대한 기록을 생각할 때마다 가끔씩 자괴감을 느낀다. 그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정한론의 모태가 된 임나일본부설이 어떤 면에서는 우리 스스로 초래하였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 민족의 상고사는 어둠속에 묻혀 있고 상당부분 사마천이 쓴 사기에 의존하고 있다. 고대사 역시 마찬가지로 위나라의 진수가 쓴 위지동이전에 기대고 있다. 우리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12세기에 쓰여 진 것에 비해 사기는 기원 1세기 전에, 위지동이전은 4세기에 쓰여 졌다. 우리가 애써 무시하는 임나일본부설의 이론적 토대가 된 일본서기도 7세기에 쓰여 졌으니 우리 조상들의 역사기록관이 안타깝다. 광개토대왕의 비문해석을 두고 동북아삼국의 해석이 각각 다른 것을 보더라도 정통 역사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최근 독도의 영유권을 두고 우리나라와 일본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과 세종실록지리지에 수록된 독도관련 내용을 역사적 근거로 한다. 한편 일본은 20세기 초 시마네현으로 편입한 기록을 근거로 몇 해 전에는 죽도의 날이라는 조례를 제정하였고 급기야 교과서에 자신들의 영토라 싣고 있다. 이에 맞서 우리는 독도에 관한 실효적 지배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국가 간의 영토주권은 다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최상위의 개념이다.
이 시집에는 독도에 관한 역사와 인문 지리적 내용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아마도 많은 책을 통해 공부를 했을 터, 이제는 독도에 관한 전문가가 다 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일 년에 한두 번 독도를 직접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이 함께 실려 있어 그 정성이 얼마나 대단한 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변선생의 이번 시집은 독도에 관한 후일 좋은 자료가 되리라 믿으며 문학적으로도 보다 성숙한 단계에 접어드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강동문인회 사무국장 김 상 호


독도를 지킨 초병의 노래

선생의 두 번째 시집 ‘독도사랑 30년’의 출간 소식을 듣고 문득 ‘수구초심’이란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여우가 죽을 때 자신이 태어난 언덕을 향해 머리를 두고 죽는다는 고사의 유래처럼 선생은 언제나 자신의 근본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생은 젊은 시절 전투경찰로 독도와 인연을 맺은 이후 이순을 바라보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삼십년 넘게 외로운 섬 독도를 그리워하고 있으니 어찌 수구초심이 어울리지 않을까. 이번에 펴내는 시집은 아마도 독도를 지킨 한 초병의 삼십년 수구초심의 결정체이리라.
선생의 독도사랑은 정말로 유별나다. 군대생활 기간 중 절해고도에 갇혀 있다는 일말의 절망감이나 파도 소리가 지겨울 법도 하건만 지금껏 가슴에 담고 살아오면서 시상으로 승화시켰으니 이 얼마나 존경스러운 일인가. 어쩌면 칠흑같은 어둠을 벗 삼아 밤하늘에 피었다 지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며 인생을 설계하던 그 날들이 선생이 가장 돌아가고 싶어 하는 시공일런지도 모른다. 선생이 독도와의 인연을 소중히 하는 것도 무한대의 시간위로 무한대의 공간이 서로 스쳐 지나다가 잠시 만나는 한 점의 의미를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내가 선생을 알게 된 것도 울릉도·독도여행에서 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독도를 지키던 전투경찰로서 그처럼 열성적인 독도 마니아 인줄은 미처 몰랐다. 몇 해 전 우리는 수중환경협회에서 주최하는 울릉도 독도수중정화활동행사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베테랑 다이버들이 대부분이었고 일반인은 변우택 선생과 뉴시스의 권주훈 편집위원, 그리고 나를 포함한 몇 사람에 불과하였다. 그 중에서 우리 셋은 참가자 중 가장 연배가 많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었다.
그 때의 에피소드는 너무나 많지만 여기서는 두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성인봉 등산을 하면서 선생은 쉬는 틈틈이 떠오르는 시상을 메모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가파른 산길을 헐떡이며 오르면서도 바다 저 너머 아련한 독도를 생각한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랴. 또 하나는 두 번이나 독도를 찾은 것이었다. 공식행사 차 방문하였을 때는 파도가 너무 거세 선착장에 10여분간 머무는 것으로 끝나자 너무나 아쉬운 나머지 애통해 하였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였던가 마침 육지에서 배가 들어오지 않아 하루의 여유가 더 주어지자 새벽같이 또 다시 독도로 달려가 회포를 풀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때의 감회는 이 시집에 실려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독도를 향한 선생의 무한사랑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최근 일본과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교과서 분쟁에서 보듯이 독도는 우리의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일본처럼 천연자원 등을 노리는 경제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나 민족적 정서로나 분명히 우리 땅이기 때문이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는 독도가 우리 시대에 분쟁지역이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변우택 선생의 독도 시집은 이러한 시대상황에 걸맞게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이 시집을 계기로 선생의 문운이 활짝 피어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