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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雜感集
촌놈과 상놈
소설가는 세상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그러나 소설가는 소설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거의 철칙으로 되어 있다. 대학 시절 나의 은사는 학보에 이것저것 잡문을 쓰는 나에게 따끔한 충고를 했다.
“야, 임마. 소설쓰는 놈이 소설만 써라.”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은 반문을 했다.
“잽을 자주 날려야 케오 펀치도 나오지 않겠습니까?”
연로한 교수에게 참으로 당돌한 말이었지만 지금도 그 말은 내게 유효하다. 물론 소설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수 많은 현상에 대하여 모두 말할 수 있는 위대한 장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세상 변화의 빠르기로 볼 때 황소 걸음 같은 소설은 뒤쳐지기 일쑤다. 특히 나처럼 게으르고 재주가 모자라는 작가는 그 빠른 세상에 한방을 먹이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잽을 날리며 그 기회를 엿볼 수밖에 없다.
내가 숨쉬고 사는 이 세상에 잽을 날리는 마음으로 여러 곳(특히 벼룩시장)에 雜感文을 썼고, 그것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큰길을 건너던 노인이 길 한 가운데서 어쩔줄몰라 하고 있었다.
한 보름 중국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며칠 멍해 있었다. 심한 멀미 때문이었다. 멀미는 속도감을 따라가지 못할 때 생기는 어지러움의 현상이다. 중국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지를 실감했다. 길 가운데 선 노인처럼 나는 우리 사회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어디를 그렇게 바쁘게 가는지 무단 횡단의 노인을 비난하며 옆을 지나치는 자동차처럼 쌩쌩 달려간다. 썩은 사과 떨어짐에 놀란 토끼가 내달리자 숲 속의 모든 동물들이 달려가는 것처럼 그렇게 달려간다.
휴가철이면 그 휴가대열에 빠지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삼천만 모두가 휴가를 간다.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또한 그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두가 학원으로 달려간다. 골목에 노는 아이들 보기가 힘들어졌다.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축제를 한답시고 거의 모든 지방에서 무슨무슨 세계대회를 열고 있다. 주민이 주체적이고 역동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문화(축제)는 가짜 문화다. 온갖 가짜와 속임수와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금방 끓어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 근성들 등등이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닌가. 그것이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한국병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우리 사회에 대하여 가장 ‘잽’을 날리고 싶었던 것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천박함’, 곧 ‘상놈의 근성’이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우리 사회는 멋과 여유가 있었다. 부자다운 부자와 지식인다운 지식인과 세도가다운 세도가들이 있었다. 한 마디로 선비정신이 살아 있었다. 그것이 근대 격변기를 거치면서 시류에 대처 능력이 없었던 선비들이 몰락해 버렸고, 반면 천대를 받던 상놈들은 서구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그것을 등에 업고 나타난 일제에 의해 우리 사회의 주류로 등장해 그들의 태평천하를 이룬 것이다.
해방된 뒤에도 우리는 그러한 모순의 역사를 깨끗하게 청산하지를 못했다. 그래서 그 천한 부류들이 오늘날까지 한국 사회의 주류에 군림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로지 편리함과 돈만 추구하는 졸부들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운 우리의 환경을 마구잡이로 파헤친다. 무분별한 아파트 건설이 도시 미관을 헤치는 것은 물론이며 삶의 질마저 삭막하게 하고 있다. 고속도로를 비롯한 각종 대형 건설들이 우리의 땅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
민족적 정체성이 없는 정치인들은 이미 낡아버린 이념의 늪에 빠져 아직도 무력 통일을 주장하며 북한에 대한 적대 감정을 끝까지 바꾸지 않고 있다. 그러한 지긋지긋한 적대 정서는 보혁과 지역간의 대결로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스스로 보수주의자라면서 민족적 전통을 부정하고 서구적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으며, 나아가 가까운 민족 또는 나라인 일본과 중국에 대해서도 진정한 선린(善隣)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천한 주류들이 물러가고 있다. 지난 대선은 그들의 몰락을 상징하고 있다. 혹자들은 세대교체라지만 그것은 분명 주류교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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