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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103 조회수 451
작성자 김창환(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www.rootgo.com) 작성일 2020.04.08
제목 술과 책 작품해설 - 우리들의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

[해설]


우리들의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



김창환(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얼마 전 타계한 어느 그룹 총수가 내건 구호였다. 책의 제목으로도 그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풍운아였다. 그의 부음을 접하면서 새삼스럽게 내가 알고 있는 작가이며 사업을 하는 이홍사를 떠올려야 했다.
이홍사를 알게 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나는 그가 하는 일의 주(主)와 부(副)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소설을 쓰려고 사업을 하는 것인지, 사업을 하면서 가외로 글을 쓰는 것인지 모호하다. 세계는 당연히 넓겠지만 넓은 세상에서 그 그룹 총수처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자각하기는 어렵다. 이홍사, 그는 국내에서 중기사업을 하다가 몽골로 고비사막을 건너가 중기사업을 했었고 지금은 미얀마에서 주택사업을 하고 있다. 이홍사 역시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와는 한 번 만났다. 그와 만난 것은 몽골이라는, 한때 내가 동경했던 고비사막 때문이었다. 나는 몽골에 마라톤을 하기 위해 갔었고 그는 그곳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때였다. 혹한과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삭막한 타국에서 그는 사업도 하면서 이야기도 만들었다. 나는 잠시 여행자처럼 머물렀으니 광활한 초원에서의 에로틱하며 흥미진진하기까지 한 그가 풀어놓은 이야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홍사와 나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로 같은 시대를 지나오며 겪은 동류의식을 공유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테지만 어린 시절 궁핍함을 겪었고 산업화시대에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조국 근대화의 꿈을 꾸었던 세대였다. 그 꿈이 현실로 구현된 삶을 살아온 세대이기도 하다. 다시 태어났던 해로 돌아간다는 이순(耳順)에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은 어린 시절 경험의 소중함이다. 단순히 농촌 생활이 아닌, 농경(農耕)의 체험이었다는 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것이었다는.
모든 씨앗은 생명을 품고 있고 씨앗 하나는 또 다른 씨앗을 남기면서도 인간은 물론 들짐승까지도 배를 채우게 한다. 인간에게 이롭지만은 않게 다가오고 지나가는 자연현상 속에서 겸손함을 배우고 더불어 이를 극복하는 인내와 지혜를 얻는 기회를 갖는다. 사실 인간이 만물이 영장이라는 것은 억지스러운 것이고 그러려니 한다면 연민과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연민과 그리움은 농경을 통해서만 우리 몸에 농축되기가 쉽다. 그러니 그와 나는 누가 뭐래도 이 땅에서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세대라는 것이다.
‘아들이 집을 나갔다’에서 목격하듯 동시대를 살아가는 듯싶지만, 그와 나의 아들은 전혀 다른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한 가지 현상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관전평을 내고 서로 다른 진영이 되어 분란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부자간의 직접적인 갈등의 표출, 정치의 문제라고 해야 하나, 이념의 문제라고 해야 하나. 이 시대의 아비들은 철저한 반공의 시대를 살아왔다. 그의 아들이 직접 그런 표현을 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는 ‘수꼴’이라는, 버리지 못하는 자기비하의 수모를 스스로 받아들인다. 그 이유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농경을 경험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밥이 하늘이듯’ 한 끼 밥의 엄중함을 알고 모르는 차이에 있다.
‘구동기어에 대한 성찰’에서 애마처럼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를 수리하면서 그는 몸체가 닳고 물려 돌아가는 기어가 부서지도록 달려야 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다본다. 자신의 노력과 결심으로 숱한 피동기어들을 돌려 어떤 대상이든 움직이게 했다는 자부심, 이제 내리막길에서 그는 힘겨웠던 그러면서 보람도 느꼈던 구동기어의 역할을 독백처럼 읊조린다.
떠나고 돌아오는 길이 일상이었을 텐데도 그는 새삼스럽게 ‘귀국길 그 마땅찮은’ 불쾌감을 드러낸다. 우리의 적극적인 대화국면 조성에도 불확실하고 신뢰할 수 없는 사안의 전개되는 것에, 우려는 당연하다. 특히 주변국과의 갈등은 수면 아래에 있던 이념문제를 노출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고 상황에 따라서 격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으니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것에 불안한 마음도 마찬가지다. ‘수꼴’로 통칭되기도 하는 기성세대는 부끄러운 식민지 시대는 겪지 않았지만, 해방이라는 찬란한 선물과 함께 안겨진 분단시대에 태어나서 오늘에 이르렀다. 철저한 반공교육과 진화의 과정처럼 숱한 굴절된 역사의 격랑 속을 헤쳐 온 세대다. 과거에 안주하려 한다는 자괴감을 갖기도 하지만 잘못된 방향성과 결국 적폐의 대상이 되는, 청산의 어이없음에 허탈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단면이다.
‘엄마는 바람이었다’에서 그는 바람처럼 이미 지나간 듯, 언제나 그렇듯 다시 새롭게 다가오는 ‘엄마’의 존재를 형상화하고 싶은 갈망을 드러낸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젊은 시절의 죄송함과 너무 이르게 그의 곁을 떠나간 엄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은 독자들의 상황이 어떠하든 자신을 돌아보게도 한다. 엄마의 부재 후에 모시게 된 또 다른 엄마는 ‘어머니’라는 구분되는 호칭으로 결국 아버지의 분신임을 드러낸다.
‘하늘 연못’에서는 사업상 자주 해외를 나가야 하는 자의 애환이 느껴진다. 자주 다니면 익숙해질 듯도 한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내가 마라톤에 심취해 있을 때도 그랬으니까. 남들은 중독이니 어쩌니 빈정거리기도 했지만, 절대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었고 대회에 나갈 때마다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천국이 아닌 좁은 기내에서 많은 시간을 견디어야 하는 시간에 그런, 연못의 낚시를 상상을 도모하는 그가 발랄하다.
종교간의 갈등, 특히 부부간의 갈등을 건너 남녀간의 갈등은 갈수록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진다. 그는 ‘불편한 동거’나 ‘집에서 개를 없애는 몇 가지 방법’을 통해 독자들에게 짬동머리를 준다. 그가 풀어내는 짬동의 의미는 틈, 이쪽과 저쪽의 벽에서 유격을 가질 수 있는 틈으로 해석하고 있다. 전통적인 가옥에서 창호지 문의 틈처럼 말이다. 그의 여유와 풍류가 아니면 풀어낼 수 없는 글들이다.
‘말론네’ 등을 통해서는 해외에 나가서도 ‘갑질’을 하듯 일그러진 모습을 들추어 우리에게 그 부끄러운 대열에 서지 않도록 경고를 던지는 의미도 담겨있는 듯했다. 아직 학습자의 범주에 들 수도 있는 자에게 과중한 부담으로 주어진 것이었지만 가볍게 다가섰다.
주인공이 한사람인 듯, 아니 나의 모습인 듯, 별개의 사람들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우리 주변에 듣고 볼 수도 있지만, 현장에서도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이홍사의 짬동머리가 돋보인다. 이홍사가 쓴 글은 쥐기만 하면 잡은 책을 놓을 수가 없게 하는 마력이 있다. 재미까지 곁들여진 글이라 읽는 내내 싫증을 내거나  나중에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글의 미덕을 지녔다.